여느 날과 같은 일상적인 저녁. 그녀에게 저녁 반찬은 무얼 하면 좋을지 묻는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은 바쁘지 않은지 바로 답장이 온다.
"빨간 고기 볶음 이요". 제육볶음을 말하는 거다. 그녀는 제육볶음을 '빨간 양념으로 볶은 거', 혹은 '빨간 거' 라 부른다. 반면 소고기 불고기는 '안 빨간 거' 로 부른다. 바로 온 답장을 보면서, "오늘은 일찍 오겠구나" 하고 미소를 지으며 장을 본다.
'띠띠띠~' 그녀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다. 곧 문이 열리고, 아들과 나는 경쟁하듯 그녀를 맞으러 간다. 먼저 안기는 자가 승자다. 결과는 아들의 승. 한 발짝 떨어져 속도를 늦춰준 아빠의 넓은 아량 덕이다. 훗.
아내가 씻고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음식을 준비한다. '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빨간 제육볶음에 참깨를 솔솔 뿌려준다. '화룡점정'. 피쳐링은 맑고 투명한 소주다. '까득' 하고 짜릿하게 열리는 병을 기울여 첫 잔을 그녀에게 건넨다. 귀한 첫 잔을 아무렇게나 줄 순 없다. 양손으로 조심스레 기울여 따라낸다. '꼴 꼴 꼬르' 하며 투명하고 영롱한 빛이 그녀의 잔에 채워진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버스에서 소란 피우던 사내, 히스테리컬한 상사, 오랜만에 만난 동기와 점심을 먹은 일, 그 동기가 둘째를 임신한 일 등... 그녀의 하루가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나도 질세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들이 아침에 엄마를 찾은 일, 아침을 잘 먹지 않아 혼을 내니 아들이 울어버린 일, 나도 속상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혼자 먹은 점심 메뉴, 식당의 위생 상태, 조미료 첨가 여부 등.
결국 무승부. 서로 눈을 바라보고 씽긋 웃으며, 잔도 마주친다. "사랑해요", "내가 더" 라는 건배사로 마지막 잔을 넘기고, 식사를 마무리 한다.
그녀가 아이와 노는 동안 난 설거지를 한다. 저녁 식사가 이대로 끝나길 아쉬워하는 듯 빨간 양념이 남아있는 접시와 소주잔에게 내일도 즐거운 식사시간을 만들자고 위로하며 정성스레 닦아낸다.
설거지를 마칠 무렵, 아내가 한마디 한다.
"오빠랑 먹고 사는 거 참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미소로 답했지만, 생각할 수록 말이 참 예뻐서 계속 머리에 맴돈다. 먹고 사는 게 재미있다는 말, 그게 나와 함께라는 말.
이따금 한마디 말로 날 붕 뜨게 만드는 그녀가 있어 하루하루가 더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