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래 그림
아들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 김에 놀이터에 들렀다. 새로 생긴 놀이터라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 아들에게 어서 오라고 재촉하며 걸어갔다. 하지만 아들은 한 두 걸음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에 지나가는 개미를 보거나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들을 보느라 이 쪽으로 오질 않았다.
"여기 재미난 거 많다~" 하고 여러 번 불러봐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리 좀 오지...' 하고 서운한 맘이 생기려던 순간, 내가 무언가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또 남자아이이기에 당연히 활동적인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도 작용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많았다. 뭔가 같이 하자고 역동적인 동작을 열심히 해도 아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모습들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나의 기준으로 아들을 판단하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자기가 더 재미있고 관심 있는 것이 분명하게 있을 텐데 말이다.
최근에 본 일본 보험사 광고가 떠올랐다. 어느 유치원에서 미술시간에 자유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이나 장난감 등 평범한 것을 그리는데, 유독 한 아이만 도화지를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버렸다. 선생님이 놀라서 부모를 불러 상담을 했고, 부모는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계속 검은색으로 도화지를 칠하고만 있었다.
다들 걱정하고 있던 중에, 간호사 한 명이 그림 한 장이 조금 다른 것을 알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모두 가져와서 넓은 강당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퍼즐 맞추듯 그림을 이어 가보니 놀랍게도 강당 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의 커다란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는 커다란 고래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광고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의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말라." 나 역시 40년간 세상의 틀이란 것이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인지라, 그 틀을 기준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에게 항상 다른 것을 인정하라고 말해왔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틀린 게 아니라고 다른 거라고 늘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아직 바라보고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아들의 세상을 담기엔 너무나 좁은 나를 알게 되었다. 조금 천천히 바라보자. 아이를 조금 더 기다려보자.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