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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Dec 09. 2015

플로리다의 태양 아래

  숙소에서만 뒹굴거리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마리아가 먼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마침 쉬는 날이라고 했다. 이곳은 관광차 온 것도 아니고 그간 지친 몸을 쉬고 싶기도 했으나 마리아가 선뜻 호의를 베풀어주니 바닷가에나 나가보기로 했다. 마이애미는 좀 벗어났지만 그래도 대서양, 플로리다의 바다에 몸을 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리아의 집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니 훌륭한 바다가 나왔다. 마리아는 특별히 자기가 좋아한다는 해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바다가 아주 예쁘거나 모래사장이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대서양의 파도가 거칠어 파도타기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파도타기라고 해봐야 맨 몸으로 둥둥 떠 있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겨 떠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지만 말이다.  
  남편과 나는 어린아이들처럼 신나게 놀고 해변에 누워 한껏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두툼한 구름을 뚫고 내리쬔 플로리다의 강렬한 햇빛은 여유를 누리기에는 좀 과했던 것 같다. 남편과 나의 몸은 길지 않은 시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버스정류장 위치를 착각한 바람에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이 넘어야 도착했다. 뭐... 해야 할 일도, 급히 가야 할 곳도 없으니... 남편은 그 참에 그늘에 누워 낮잠을 한 숨 더 잤다. 이렇게 여유로워도 괜찮은 것인가 싶을 만큼 한가한 오후였다. 



  저녁 5시가 넘어서야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 그래 봐야 한 시간쯤 더 걸어가야 하는 곳에 내렸는데 '히스토릭 다운타운 Historic downtown'구역에서 마침 마을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옷이며 기념품을 파는 천막이 쳐지고 생맥주와 그릴에 구운 온갖 음식을 파는 트럭들이 자리를 잡았다. 거리는 흥겨운 컨트리음악으로 흔들거렸다. 남편과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거리에 앉아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리듬을 탔다. 

  우리 주변에 앉은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황금빛 맥주는 무척 유혹적이었다. 이 날씨에, 이 거리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을 들이켜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한 아기 아빠는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유모차 아래 실어놓은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한 캔 더 꺼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빠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한 듯했다.     
  남편과 나는 거리의 풍경을, 음악의 흥겨움을 일단 마음에 담았다. 숙소로 돌아와 마리아가 기꺼이 내어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켤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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