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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Dec 09. 2015

날지 못하는 새

  중요한 만남을 끝내고 긴장이 풀린 탓에 몸이 늘어졌다. 오전 내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서 피로를 풀었다. 어제 사다 놓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는데 너무너무 배가 불러 다 먹을 수도 없었다. 열악한 남미를 다니며 위가 작아진 것인지 미국의 음식이 푸짐한 것인지... 둘 다 인 것 같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려면 또 걸어야 했다. 숙소 근처에는 중국집과 바 하나가 있을 뿐이고 우리는 차가 없었다. 멜버른이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국제면허증을 챙겨 오는 것인데...
  세상천지에 이렇게 넓으면서도 대중교통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 그것도 이 거대한 대륙 미국의 도시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나마 있는 버스들도 모두 한 방향으로만 다녀서 두 정거장쯤 뒤에 있는 마트에 가려면 두 시간을 버스에 앉아 돌아야 하는 어이없는 노선이라니...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참 다양한 이유로 걷고 또 걸었다. 
  월마트까지 한 시간이 좀 넘게 걸어갔다. 
  플로리다는 매우 더웠다...



  지도에는 'neighborhood walmart'라고 표시되어있길래 좀 작은 마트겠거니 했는데 월마트가 작을 리는 없나 보다. 역시나 어마어마한 넓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과 물건을 팔았다.  
  먹거리를 잔뜩 샀다. 덩어리가 모두 커서 잔뜩 살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많아도 너무 많은 곳이었다. 무서울 정도다. 
  버스를 기다리며 보고 있자니 뚱뚱한 사람들 역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외모적인 부분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정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마트에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전동휠체어가 여러 대 있었는데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보다 사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다리가 부어있거나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물론 다른 이유로 거동이 불편하여 체중이 늘었을 수도 있겠지만 체중으로 인해 거동이 더 불편해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은퇴자들이나 요양을 위해 유입된 인구가 많다는 플로리다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넘쳐나는 음식과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생활이 어려운 이곳의 환경적 특성 또한 이 사람들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몇 개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마트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만 이곳과 같은 곳은 본 적이 없었다. 편리한 시설이며 청결하고 정돈된 도시는 분명히 남미의 어느 나라보다도 살기 좋은 곳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남미에서는 거동이 어려울 만큼 뚱뚱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어딘가에 있기야 하겠지만 마트에서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먹거리나 생활방식을 보면 뚱뚱해지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사람들도 뚱뚱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운해할 사람들이지만 역시 마트에서 전동휠체어를 대여할 만큼 보편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았다. 

  늘 궁금한 일이었다. '선진'이나 '발전', '혁신'과 같은 단어들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말이다. 
  모든 동물들은 뛰어난 후각이나 청각, 심지어 초음파를 쏘아서 정보를 파악할 만큼 뛰어난 생존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유일하게 인간만 신체 외부의 물질에 의존하여 생존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진화해왔다. 아니, '인간이 진화했다.'는 표현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인간이 편의시설을 진화시켰다.'가 옳은 말이다. 점점 더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눈을 대신할, 다리를 대신할, 손을 대신할, 수많은 첨단 기계들, 심지어 두뇌를 대신할 기계까지 손에 쥐고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주다 못해 완전히 역할을 대신 맡게 되면서 인간은 동물로서의 독립적인 생존 기능을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몸을 두고만 살펴봐도 기능적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를 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특히 인류 진화의 선두에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사람들의 생활은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는 기본적인 생존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에어컨이 없는 거리에서는 더위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차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 마트가 없으면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 휠체어가 없으면 걸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사람들. 이쯤 되면 현인류의 시대가 맞이하는 변화가 '진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종의 퇴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편리'를 제공하기 위한 변화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미국을 쫓아 변화와 혁신, 최첨단의 디지털 세계를 최우선의 가치로 살고 있는 우리라고 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도 점점 '편리'에 잠식되어 많은 기능을 상실해가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열악한 환경으로 몹시 불편한 삶을 사는 대신 강한 생존력을 갖게 되고 누군가는 훌륭한 삶의 환경에 놓인 대신 신체 기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으니 무엇이 더 좋다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인류의 변화를 어느 방향에 맞춰야 할지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또 한 시간쯤 기다려 탔다. 마트를 한 번 다녀오니 하루가 지났다. 


마리아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도 술은 마음껏 마셔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무더위와 어마어마한 모기떼로 이 바는 이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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