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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Dec 09. 2015

가깝고도 먼.

  마리아 아줌마가 언제까지고 편하게 있다가 나가라고 호의를 베푸셔서 아침 일찍 눈을 뜨고도 자리를 털지 못했다. 어제도 무언가를 하다가 불도 못 끈 채 잠이 들어버려서 새벽부터 잠을 깼다가 다시 자다가를 반복해서 더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마음을 졸이며 인터넷을 놓지 못했다. 난이도 중상에 해당하는 쿠바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최대한 자료를 찾아 사진으로 남겨놓느라 바빴다. 쿠바에서의 인터넷 사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 집처럼 편안해진 마리아의 집에서 있는 힘껏 뒹굴거리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집 앞에 편히 갈 수 있는 유일한 밥집 '차이나 킹 china king'에서 음식을 좀 사 왔다. 미국인들 입맛에 맞춘 것인지 매우 짜고 자극적이지만 그나마 한국음식에 대한 욕구를 잠재워주기에는 중국음식만 한 것이 없었다. 
  어젯밤, 마리아가 두 시에 택시가 도착하도록 예약해 준다고 분명히 약속했었다. 나도 몇 번이나 시간을 강조해 얘기했다. 그런데 가방을 꾸리고 집 밖으로 나와 기다려보았으나 20분이 지나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집 안에 일반 전화기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일 나간 마리아에게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불러내라고 하기도 뭐했다. 우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리아 외에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차이나 킹 가족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중국인 아주머니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어린 아들의 통역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배달 나간 남편이 돌아오면 콜택시를 불러줄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시간은 2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탬파 Tampa로 향하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멜버른 공항에서 4시 반에 출발할 예정이지만 한 시간 전에 가서 버스표를 수령해야만 했다. 공항은 차로 15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지만 그곳에 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다. 
  2시 50분. 사장님이 돌아와 콜택시를 불렀다. 5분에서 1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우리는 가게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며 택시를 기다렸다. 시간은 이미 3시 5분이 되었지만 택시는 오지 않았고 큰길에 지나가는 택시라도 잡아볼까 했던 남편도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돌아왔다. 나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차에 앉은 흑인 할머니를 유심히 쳐다보며 태워달라고 하면 거절 하시진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또 택시를 불렀으니 오기야 오겠지... 라며 눈길을 거두었다. 할머니의 차는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났다. 
  마음만 심란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서 있기를 또 몇 분, 중국집을 드나들던 낡디 낡은 스포츠카를 모는 남자가 우리가 오래도록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우리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는 했지만 정작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택시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그 대답이 나 스스로도 공허하기만 했다. 
  중국집에 들어갔다가 사장님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남자는 다시 나와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줄 테니 음식이 나올 때까지 1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남편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때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시간은 좀 다르게 흐르는 것이 분명했다. '1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간 아저씨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놀리는 것인가? 모두가 다 선의를 가장한 거짓말쟁이들인가? 내가 말길을 잘못 알아들은 것인가?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머릿속은 온통 질문뿐이고 답은 없었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과하게 넘쳐나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미국은 있는 자들만을 위한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아서 무엇도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섬뜩함에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치는 사이 시계는 3시 15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중국집 사장님이 다시 나와 자신의 배달원- 스포츠카를 모는 아저씨는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이 우리를 데려다줄 테니 또 '1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사장님도 택시가 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1분 만에 아저씨가 나왔고 사장님까지 나서서 우리 짐을 좁은 차에 구겨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사장님은 낡은 배달원의 차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것을 걱정해주었고 트렁크 문이 닫히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차를 쓰라고까지 해주었다. 나보다도 작고 깡마른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듬직해 보였다. 
  다행히 뒷자리로 가방을 옮겨 싣고 트렁크 문이 닫혀 우리는 서둘러 출발했다. 배달원 '케빈 Kevin'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미소를 띠며 유쾌하게 차를 몰았다. 차 안에는 케빈이 배달해야 할 중국음식의 맛깔스러운 냄새가 진하게 퍼졌고 잘 닫히지 않는 창문으로는 찝찌름한 바닷바람이 거세게 들이쳤다. 
  우리는 3시 반 정각! 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케빈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전하며 
터미널로 들어섰다. 
  불과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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