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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Dec 09. 2015

여행은 존재의 완성

  탬파에서는 또 다른 고마운 분의 환대를 받았다. 수줍은 인사로 맺게 된 낯선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최고의 잠자리와 식사를 대접해주시고 내가 궁금한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분의 가족들 역시 기꺼이 시간을 내어 우리 부부에게 마음을 내어 주셨다. 그분들은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품격 있는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었고 사람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표현할 줄 아는 분들이었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멜버른에서도 그렇고 이곳 탬파에서도 그렇고, 사심 없이 베푸는 선의의 감동은 이렇게나 큰 것이구나, 감동과 감사는 마음을 채우고도 넘쳐서 나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것이구나. 너무나 큰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신 고마운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달리 미술관 The Dali museum

         

종류별 맥주를 맛보고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시가 시티 브루잉 Cigar City Brewing. 


이름 그대로 무척 하얗고 깨끗한 클리어 워터 비치 Clear water beach

       

           

세이프티 하버 Safety Harbor의 저녁

        

선의를 베풀어주신 고마운 두 분께 감사한 마음 잊지 못 할 것이다. 

                                                

세이프티 하버 Safety Harbor의 저녁

  

  우리는 '메가버스 Megabus'를 타고 마이애미 공항으로 향했다.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가버렸다. 우리는 어느새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에 마음이 풀어져버려서 쿠바로 떠나는 것이 설렘 이전에 걱정이 되어버렸다. 완전한 미지의 나라,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는데 그 흔한 여행책자 하나 없이 가야 하는 나라인 쿠바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고비였다. 

  마이애미 공항은 미국답게 넓은 땅을 차지하고 넓게 퍼져있는 곳이었다. 환전을 하려고,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느라고, 체크인을 하려고, 그리고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걸은 거리만 해도 5km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인터넷도 안되고, 카트는 유료고... 여러 가지로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공항이었다. 
  쿠바로 가는 저렴한 비행기는 바하마 Bahama를 경유했다. '바하마 군도'... 학창 시절 세계지리 시간에나 한 번 들어봤을 법한 곳이었다. 모르지 않지만 여태껏 나의 삶에 없었던 나라. 그런데 체크인을 하면서부터 만나기 시작한 바하마 사람들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이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이 흥겨움은?'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서 알 수 없는 흥과 유쾌함이 느껴지는데다가 매우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비행기에 탈 때까지 까다롭게 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체크인 절차를 다 마치고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 다가오시더니 경쾌한 목소리로 대뜸 남편에게 물었다. 
  "너 등산 다녀오는 길이지?!"
  우리가 체크인할 때 뒤에 서 있었는데 큰 가방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것을 보니 분명히 산악인일 거라고 자기 남편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뒤에 서 있는 남편의 표정을 슬쩍 보니 무슨 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 우리는 산악인은 아니고 그저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하니 바하마에는 왜 오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바하마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니 꼭 와 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남편의 곁으로 돌아갔다. 
  정말로... 유쾌한 부부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바하마가 어떤 나라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비행시간은 매우 짧았다. 과장 조금 보태어 이륙하고 레몬맛 무알콜 음료 한 캔 마시고 치우니 도착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비행기의 승무원들 역시 이상한 흥의 기운을 풍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하마의 나사우 Nassau공항에 내려 가방을 찾아 잠 잘 곳을 찾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라 공항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편해 보이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자바라 철문이 굳게 닫힌 상점 앞에 공항 직원들이 모여 시끌시끌했다. 그들은 상점 안에 틀어져있는 텔레비전으로 농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 생전에 그렇게 시끄럽게, 그렇게 격렬하게, 그렇게 흥분해서 농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4 쿼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철문에 붙어 서서 어찌나 신나게 응원을 하고 훈수를 두시는지, 열정이 대단하다 싶었다. 
  보통 더운 섬나라 사람들이 여유롭고 함께 어울려 놀기를 즐거워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농구 경기 하나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열정 가득한 바하마 사람들


  그들의 열정 가득한 목소리는 잠결에도 계속해서 귓전을 울렸다. 하지만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 언젠가 꼭 바하마로 여행을 오겠다는 마음만 되뇌었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바하마는 영영 지도에만 존재하는,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만 남아 있었겠지... 그곳에 이렇게 유쾌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평생 알지 못하고 살았겠지...

  

아침을 맞는 바하마 공항

 

불가사리와 파인애플을 새겨넣은 동전이라니...바하마 사람들의 유쾌함이 묻어났다. 


  여행을 정의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그것들에 굳이 하나를 추가하자면 이제 나에게 여행은 '존재의 완성'이다. 

  내가 보고 겪은 모든 것은 그동안 존재하였으나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공간만 다를 뿐 동시간을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이 지구 상에 얼마나 많은 수가 존재하는지 나는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없다고 해서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그랬다. 나에게는 있다, 없다를 말할 수도 없는 상태, 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것들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내가 겪은 모든 것은 이제 나에게 존재하는 것들이 되었다.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들과 바이칼의 여명, 빈의 '키스'와 플리트비체의 쏟아지는 폭포들, 로마의 종소리와 떼제 마을의 별들, 까미노 위의 수많은 꽃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존재들이 이제 나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내가 어느 날 문득 알아차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 내 마음에 없는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직박구리'처럼 말이다. 이렇게 완성된 수많은 존재들은 내 삶 안에서 반짝반짝 제 빛을 내며 나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겠지.   


직박구리는 아니었지만 바하마 공항으로 들어온 작은 새 한 마리. 거대한 우주의 공간에 언제부터 존재했을지 모를 이 녀석은 이 사진에 담겨 나에게 '완성된 존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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