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다시 3일

by 신지명

스키어들 틈에서는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쓴 채 약을 먹고 잠을 겨우 청하던 몽골의 '엄마'같은 여성이 한 분 있었다. 조용히 안경 너머로 신문의 퍼즐을 맞추고 먼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해바라기씨만 까먹던 분이었다. 뭔가 삶이 팍팍한 우리네 엄마들 같아서 마음이 쓰이던 분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무슨 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젊은 군인들 틈에 앉아서는 몇 시간이고 사람들을 웃겨대고 소리 높여 깔깔대고 웃는 통에 오전의 고요함이 완전히 깨졌다. 사람은 참... 오래 두고 볼 일이었다. 그 떠들썩함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군인들이 우르르 내리고 혼자 남겨진 키리을은 다행히도 더 이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 번, 남편의 라이터를 빌리고는 그냥 가려다 '라이터 주고 가야지'라는 남편의 한국어를 알아들은 듯 다시 돌아와 돌려준 것이 전부였다.
키리을은 눈치가 좀 없고 집요하기는 하지만... 정이 많고 착한 아이인 모양이었다. 물을 뜨러 가는 길에 보니 덩치가 작지 않은 여자 네다섯 명이 의자에 둘러앉아있는 틈새에 낀 채 벽에 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몸을 돌려 누울 수도 없게 아주머니들의 엉덩이가 깊숙이 들어와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는 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녀석은 그저 호기심 많고 정이 있는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군인들이 떠난 열차 안은 다시 평화로워졌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음악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칙칙하던 하늘도 구름이 걷혀 지평선부터 에메랄드빛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청명한 빛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우리는 다시 나무를 찬양하며 풍경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찌뿌둥한 하늘만 보다가 만난 하늘빛도 이리 반가울진대... 남편의 말대로 이들이 집집마다 에메랄드 색이며 파란색을 칠하는 것은 이런 맑은 날에 대한 염원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시베리아의 벌판이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초록으로 뒤덮인 자작나무 숲을 만나러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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