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고 안락했다. 가장 걱정했던 화장실도, 이후에 몇 차례 고장이 나서 수리를 기다려야 하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양호했다. 보급된 매트와 담요, 깨끗이 세탁된 새하얀 시트와 수건까지, 3박 4일의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6인실 한 칸에 객은 우리뿐이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벽에 가로 놓인 1, 2층의 침대 네 개, 통로를 사이에 둔 반대 벽에 세로로 놓인 1, 2층의 침대 두 개. 이렇게 여섯 개의 자리가 하나의 칸을 이루어 총 9칸, 52개의 침대가 기차 한 호차에 마련된 3등석(reserved seat) 기차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글들을 검색해서 미리 상태를 파악하고 서둘러 1층 자리를 예매한 것이었으면서도 밟고 올라설 계단도 없고 성인 한 명 허리 펴고 앉기도 어려운 2층이면 어쩔 뻔했느냐, 우리의 심란한 배낭들을 욱여넣을 침대 밑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통로 저편 자리였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호들갑스럽게 안도하고 감사했다.
여행의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첫날밤을 원 없이 늘어지게 자고 아침까지 배불리 먹었다. 모든 것이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라 창밖의 풍경은 유럽의 어느 대저택에 걸린 명화처럼 멋지게만 느껴졌다. 그저 '감상하는 것', '감탄하는 것' 이외의 무엇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철커덕 철컥.. 철커덕 철컥... 하고 소리를 내는 기차의 기분 좋은 흔들림과 끝없이 펼쳐진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 한없이 빠져들 수 있었다. 풍경을 보다가 잠시 책을 읽고 노곤 노곤하게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일기를 쓰고 다시 풍경에 넋을 놓기를 반복했다. 간혹가다 남편과 나누는 말은 '저기 봐!'라는 외침뿐이었다. 행여나 멋진 풍경을 놓칠까 봐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은 꼭 깨워서 함께했고 같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다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기차의 또 다른 매력은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빛이었다. 푸르스름한 새벽과 붉게 올라오는 아침의 햇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다가 점점 따사롭게 내리쬐는 정오의 햇살, 그러다 다시 그림자를 짙게 늘려내는 오후의 햇살까지, 그리고 빛도 없는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하루의 시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는 충만감에 가슴이 벅찼다.
어느 날엔가 망중한으로 나섰던 소풍에서 나는 남편에게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냥 풀로 태어났으면 좋겠어'라고 한 적이 있다. - 이런 황당한 바람에 한 번도 핀잔을 준 적이 없는 남편에게 새삼 감사한다. - 그런 바람이 생긴 이유에 대해선 나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그저 사는 게 너무 바쁘고 팍팍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의 바람대로 '나무'처럼 한자리에 앉아 하루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내고 보니 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삶'에 목이 말라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햇살이 들면 몸을 움직여 온몸 구석구석 온기를 느끼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밤이 되면 고요해지는 삶.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바쁘게 살았는데 정작 창밖의 저 나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자연의 시간, 우주의 거대한 움직임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인공의 시간과 공간'에서 기이한 삶의 형태로 자연에 거슬러 살았으니 몸이 병들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주는 하루는 분명 충분한 시간이었다. 세 끼의 식사와 휴식, 사색을 하고 햇빛을 만끽하고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는 일을 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불평은 순전히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일 뿐이었다.
햇빛을 느끼며 만족스러움에 젖어있던 그때, 고요함을 깨고 들어선 사람들은 매우 앳돼 보이는 러시아 군인 무리였다. 커다란 짐 보따리가 통로에 가득 찼고 주먹만 한 얼굴을 더욱 작게 보이게 하는 두꺼운 군복에 묻힌 군인들이 빈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계태세를 갖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알만 굴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빈 공간은 남지 않았다. 모든 침대가 주인을 얻었다.
군인들은 한참 동안이나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정돈하느라 분주했다. 어수선함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으나 나는 행여나 군인들이 낯선 우리에게 거칠거나 무례하게 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바싹 긴장을 했다. 흐트러진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자세도 바로 한 뒤 신경을 곤두세웠다. 혼자서 군인 무리를 지나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도 염려되어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몇 시간이 아무 일 없이 흐르고 같은 공간에 있는 서로의 존재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서야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는 선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기적 같은' 사실에 감사했다. 사람이 선한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했다고 해서 무조건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 수적 우세를 내세워 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남편의 곁을 떠나 좁은 공간으로 혼자 들어서도 치근대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계심이 누그러지고 난 후 찬찬히 살펴보니 군인들 대부분의 손이며 얼굴이 고왔다. 직업군인은 아닌 것 같고 이름 없이 번호가 붙은 슬리퍼며 컵 등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훈련병들인 것 같았다. 대부분 말 소리도 조용했고 몇 시간씩 책을 읽거나 빼곡히 글자가 적힌 노트 따위를 보기도 하였다. 식사를 할 때도 둘, 셋씩 작게 모여 깔끔하고 간단하게 군용 식량을 먹었고 단 것을 엄청 좋아하는지 각설탕을 서 너 개 씩 넣은 차를 마시거나 작은 알사탕을 끊임없이 꺼내 먹기도 하였다.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자리에서는 땅콩이며 해바라기씨를 쪼개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이후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모습은 러시아 여행 중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수입된 식료품의 가격이 제법 비싸고 지역 간 이동시간이 긴 데다가 여가 거리가 별로 없는 이들의 삶의 형태가 만들어낸 소일거리며 간식거리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단편적으로나마 보게 되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오래도록 그들을 관찰했다.
군인들이 조금 일찍 잠이 든 덕에 영화를 보기에 매우 만족스러울 만큼의 조용한 밤이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계획을 세우며 꼭 봐야 하는 영화가 있었다.
'닥터 지바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시간을 훌쩍 거슬러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것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일이었다. 이 영화를 미처 볼 기회가 없었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탓에 내용은 전혀 모르면서도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진 겨울의 시베리아라는 감성이 환상처럼 남아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노란 바탕에 자작나무를 빼곡히 채운 그림 한 장, '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 익숙한 그 노래가 한참을 흘렀다. '서곡 '이라는 생소한 구성이 마치 오페라나 연극을 영화로 옮긴 것 같았다. 1부의 마침엔 '간주곡'까지 들려주었다.
고전 영화 특유의 다소 과장된 연기와 표현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하였으나, 그리고 주인공들, 특히 라리사의 계속되는 비윤리적인 행보에 공감을 하기가 어렵기는 하였으나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만큼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듯이 유난히 시끄러웠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의 자리를 정하지 못해 다소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었다. 불의가 만연하는 사회를 지켜보며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러 거리로 뛰쳐나가기에는 뭔가 열의가 솟지 않았다. 투쟁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뒤로 물러나 앉아 투쟁과 변화의 무용無用을 중얼거리기엔 또 피가 끓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나를 묶어두는 것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외쳐야 할지 가치를 명확히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변하지 않고 언제나 옳은 가치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것들은 격렬한 외침으로 뱉어내는 순간 변질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혼란은 '나'의 성질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나서 구호를 외치기엔 잡다한 생각이 지나치게 많고 전략가라고 하기엔 감성적이라 논리적인 사고 따위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비판가가 되기엔 '그 입장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어쭙잖은 이해심에 발동이 걸려 줏대 없는 소리를 지껄이게 된다. 이런 내가 있어야 할 자리,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생각이 많았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는 명제는 분명 성공적인 삶 -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우주의 한 구성으로 내게 주어진 성질에 맞게 그 역할을 온전히 행했다는 성공감 - 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한데 그것을 깨닫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뭔지 모를 해소감이 느껴졌다. 유리 지바고, 그의 행보와 감성에 동의하였고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마저도 핏대 세워 비난하기 어려웠다. 그의 변하지 않는 감성이 '바리키노'의 혹독한 겨울을 살아내고 피어난 노란 수선화처럼 감격스러웠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요동치는 가운데 한결같이 중요한 가치를 지키고 살아낸 지바고의 삶이 잔인한 겨울의 끝에 봄을 맞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안식을 주었다는 결말이, 그 감성의 삶이 지바고의 어머니에서 그를 통해 또다시 그의 딸 토냐로 이어지는 영원성을 가진다는 메시지가 나에게 제법 희망적이었다.
비록 내게 예술적 재능은 없을지언정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곁에 두며 사는 것은 가장 뜨겁게 동의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했다.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기차 밖의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에서 시작되는 순결한 감성. 지바고처럼 순수한 감성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얼굴과 손이 새하얀 어린 군인들과의 첫날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