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

by 신지명

하룻밤을 보내고 군인 무리들이 금새 내릴 것 같지 않음을 확신한 뒤에는 오히려 함께 시간을 보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 적극적으로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사람들이 아닌지라, 또 자유의 시간을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깝기도 하였던지라 그 어떤 행동도 하지는 않았다.
그네들도 그다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한 녀석이 물을 뜨러 가는 나를 불러 세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러시아 말만 늘어놓는 통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미안하다는 표정만 지어주고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또 두 어 시간이 지나고 급기야 그 녀석이 우리 자리에 찾아와 '세르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 이름은 영 어려워할 것 같아 세례명으로 우리 소개를 하였지만 그마저도 외우기 어려웠는지 그저 'tourist'라고만 재차 확인했다. 함께 온 '꽐랴'라는 몽골인은 몇 개의 영단어로 우리가 어디에 가는 길인지, 이르크추크가 자신의 고향이고 아주 좋은 곳인데 왜 거기에 가지 않는지 등을 물었다. 대답을 해줘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아 번역기마저 무용지물이라 우리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호기심과 아쉬움이 혼재한 눈빛만 반짝거리다가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저녁을 먹을 즈음엔 통로 건너편에서 10분이 넘도록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가 드디어 용기를 낸 녀석이 한 명 다가왔다. '안드레이'는 짧으나마 영어로 몇 마디를 더 할 수 있었다. 안드레이에게 듣기로는 이들이 우리의 추측대로 신병들의 무리이고 19-20세 즈음의 어린아이들이며 총 9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안드레이는 대학을 다니다 왔으며 우리 같은 동양인은 처음 본다고 했다. 우리의 저녁식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뜬 안드레이는 우리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열심히 전달했다. 우리가 몹시 궁금했지만 수줍어서 혹은 영어를 하지 못 해서 다가오지 못 했던 군인 아이들은 안드레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고 종종 우리를 쳐다보며 눈짓을 하기도 하였다.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문득 여행지에서 당연하게 쓰게 되는 영어가 이들에게는 사실 적대감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러시아어를 조금도 공부해오지 않은 것이 미안하기도 하였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였지만 우리는 북적거림보다 딱 이만큼의 거리가 더 편하다고 위안하며 굳이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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