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3일

by 신지명

군인들과 우리는 딱 '그만큼'의 관계였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무슨 마법을 걸어놓은 것인지 이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소리에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어 새벽잠을 깨었다.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눈을 뜨고는 다시 잠들지 못해 아예 일어나 앉았다. 이들도 죽 그래왔듯이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각자의 짐을 정비하느라 분주했다.

치타 Chita 역에 도착했다. 함께 있는 내내 본인의 자리며 짐을 야무지게 정리하고 여성스럽게 바느질을 하여 우리가 '깔끔이'라고 칭하던 내 윗자리 녀석이 여태 눈길 한 번을 안 주더니 매우 수줍은 목소리로 짧은 작별 인사를 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뭐... 특별한 무엇을 함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마음이 그래 이른 아침의 찬 공기를 무릅쓰고 무리를 따라 내렸다. 푸르스름하고 날카로운 새벽 공기를 흡-하고 들이마시니 몸서리가 쳐졌다. 발을 동동 구르며 딱히 무엇도 하지 않은 채 군인들이 짐을 모으고 인원을 점검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이들이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가 되어서야 남편이 수줍게 꽐랴에게 다가가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는 다시 멀찌가니 서서 배웅 아닌 배웅을 하고 섰다.
모두가 짐을 챙겨 플랫폼을 지나 역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갑자기 꽐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뜯지 않은 군용 식량 상자 하나를 남편의 품에 안겨주고는 묵직한 악수를 인사로 다시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눈을 뜨고 초코파이라도 한 상자 줄까, 개수가 얼마 안 되는데, 괜한 짐만 되면 어쩌나..- 이번 여행이 지나면 이놈의 쓸데없는 생각을 좀 멈추게 될 수 있을까?..- 하며 망설였던 것이 후회되어 얼른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남편이 서둘러 다시 기차로 들어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초코파이 상자를 들고 나와 작아져가는 무리를 향해 뛰었고 성공적으로 꽐랴에게 상자를 안겨주었다.
그들이 역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푸른 공기 속에 머물렀다.

모두를 보내고 돌아온 기차 안은 처음보다 조금 더 고요하고 다소 적막했다. 다시 철커덕 철컥, 철커덕 철컥... 하는 기차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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