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편평한 곳, 우유니

by 신지명

열세 시간을 꼬박 달렸다. 비행기 좌석보다 편한 의자 덕분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길이 험하고 차 안이 추운 탓에 잠을 편히 잘 수는 없었다.

작년 10월 추위를 느끼기 시작해서 겨울의 시베리아를 지나 서늘한 유럽 땅을 건너 겨울이 시작되는 남미에 왔으니... 8개월째 춥다. 도대체 언제쯤 '춥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될까?
아침 어스름이 올라올 즈음에 우유니에 도착했다.
여기는... 뭐지?!
황량하고 허름한 마을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차들은 시커먼 매연까지 뿜어대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마을의 풍경에 정신이 멍했지만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너무 추운 아침 공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인터넷에서 얼핏 봤던 '알카야 Alkaya'라는 여행사를 찾아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자신의 여행사로 데려가려는 장사꾼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그래도 알카야를 물으면 길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기차역 근처에 위치한 알카야는 홈페이지를 제법 그럴듯하게 해 놔서 큰 회사인 줄 오해했다.
우리가 첫 손님인지 현지인 아주머니가 잠겼던 문을 열고 우리를 좁은 사무실 안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오늘 당장 떠나는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고 2박 3일 만에 다시 우유니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3일째에 우유니로 돌아오는 사람은 없고 모두 칠레로 넘어갔다는 얘기만 있어서 우리도 칠레에서 페루로 가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유니 투어를 3박 4일 하자니 페루로 넘어갈 시간이 빠듯하고 피곤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고 일단 찾아온 것이었는데 다행히 딱 구미에 맞는 투어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가격도 인당 108달러로 인터넷에서 본 것 중 저렴한 축에 속했다.
열 시 반에 떠나는 투어를 신청하고는 3일 후 묵을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숙소도 역시 인터넷에서 슬쩍 본 '아베니다 Avenida'라는 호스텔로 바로 찾아갔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찾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아르헨티나에 있는 동안 짬을 내서 인터넷을 뒤져 본 게 다행이었다. 다행히 둘이 쓸만한 방이 비어있었고 현금 결제를 해야 해서 한 블록 건너에 있는 환전소에서 돈을 좀 더 바꿔 지불했다. 화장실이 달린 더블룸이 140 볼, 이만 이천 원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느라 골치가 아팠던 두 가지 중요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식당 메뉴에 라마스테이크가 적혀있길래 고민도 않고 주문했다. 나름 관광지라고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55 볼이면 사실 바가지에 가까웠다. 그래도 추위를 피해 아침 햇살에 몸을 녹일 수 있고 와이파이까지 쓸 수 있게 해주는 값 치고는 봐줄 만했다.
라마스테이크의 맛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약간의 짭조름하고 독특한 고기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제법 먹을만한 '고기' 맛이었다. 기름기 하나 없는 아주 쫄깃쫄깃한 고기 말이다.
식당의 직원은 손님이 두 팀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믈렛 주문을 빠트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음식이 나오지 않아 설마 주문이 안 되었나 싶어 물으니 직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을 지었다. 라마 고기와 나풀나풀한 퀴노아 밥을 둘이 나눠먹은 것으로도 충분히 배가 차서 오믈렛은 잊어버리고 다시 추운 거리로 나왔다.
순례길 이후로 식사량이 급격히 줄어 적은 양의 음식으로도 금세 배가 찼다. 그 전에는 너무 과하게 많이 먹긴 했던 것 같다. 허기만 사라지면 되는 식사를 배가 아프도록 부르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했으니 살이 쪘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부디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한식의 푸짐함에 과연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싶긴 하다.
미국에서 온 이십 대 청년 조단 Jordan과 소피 Sophie, 오스트리아 부부-이름을 두 번이나 물어봤지만 희한한 발음의 이름을 결국 외우지 못했다. -와 함께 지프에 올랐다.
사실 우유니 소금 사막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은 터라 그다지 설레지는 않았다. 건기의 사막은 그저 하얀 사막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은데다가 이미 우유니 시내의 황량한 환경에 약간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고산병 증상이 계속 남아서 몸이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증상 중 하나로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더니만 정말로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았다. 사진으로 수도 없이 보았던 기차 무덤은 대충 어슬렁거리며 둘러보고는 차에 탔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다고 신이 나 있었다.
건기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는 유명한 소금 호텔 앞에서 가이드 리노 Rino가 차려준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추워서 바깥에서 먹는 식사가 편치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맛있어서 한 그릇은 거뜬히 먹었다. 오늘 아침 먹은 식당의 음식에서도 느꼈지만 토마토나 오이 같은 야채가 제법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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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은... 정말 하얀 세상이었다. 온통 하얗게 눈부신 땅이 어디까지 펼쳐져있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사막의 지평선을 눈으로 쫓던 나를 리노가 부르더니 공룡과 킹콩, 코끼리 피규어가 담긴 검은 봉지를 소심하게 건네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우유니 투어는 여행사의 특성보다도 가이드가 얼마나 재밌는 사진을 잘 찍어주는지, 구도와 콘셉트를 잘 잡아주는지에 따라 인기척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친절함이나 특별한 풍경 포인트를 잘 찾아내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보편화되어 있었다.
나이가 좀 있는 리노는 활기차게 사진을 찍어주는 대신 조용히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챙겨주는 편이었다. 운전도 다른 가이드들처럼 스릴 넘치게 하기보다 조심조심 정해진 길로 안전운전을 하는 편이었는데 나는 그런 리노의 안정감이 훨씬 듬직하고 편했다.
리노가 건네준 피규어를 바닥에 놓고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다. 사진 찍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사막 자체를 감상하지 못할까 봐 사진은 몇 장 찍는 시늉만 하고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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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고여 거대한 거울처럼 하늘을 담아내는 우유니를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아쉬울 줄 알았으면 동선이 좀 꼬여도 우기에 남미부터 들를걸 그랬다며 남편도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팀들이 모두 떠난 고요한 사막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준 리노 덕분에 환상적인 저녁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나즈막한 산과 우리, 그리고 해와 달만 떠있는 공간의 고요함은 우주의 어느 행성에 서 있는 것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었다. 해가 지는 하늘의 색과 그 색을 받아내 붉게 물들었다가 밤이 찾아드는 반대편 하늘의 색이 한눈에 대비되며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해와 달의 공간은 하나이면서도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결혼 7주년이 되는 오늘, 남편과 나는 다른 색을 지녔지만 하나의 공간에 함께하는 해와 달처럼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곳에 함께 있는 지금을 축하했다.
"7년 동안 계속 사랑했어"
속삭이듯 던진 남편의 말이 어떤 선물보다도, 어떤 풍경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운 우유니에서 결혼기념일을 맞아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챙겨 온 원피스는 영하의 날씨에 꺼내보지도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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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438.JPG 해와 달의 공간


해가 지고 어두워진 사막을 한 시간쯤 더 달려 또 다른 소금 호스텔에 도착했다. 소금으로 지어졌다는 특이성을 제외하고는 몹시 열악한 곳이었다. 너무 추워서 가지고 있는 두꺼운 옷을 모두 다 껴입고 침낭에 담요까지 꼭꼭 덮어야 했다. 샤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돈을 좀 내면 온수를 틀어준다고는 하였지만 그 온도와 물의 양은 상상이 되었고 샤워 후의 추위를 견딜 자신도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린 저녁식사로 뜨끈한 야채수프와 두툼한 닭다리 구이가 나와 든든히 먹은 것이 그나마 추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딱딱한 소금 침대에 누워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내일 아침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기를 바라고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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