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떼제에서의 첫날밤보다 춥지는 않았다. 그 밤에 비하면 단잠을 잤다. 우유니 사막의 밤이 생각보다 온도가 많이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준비하지 않고 맞이했던 그날 밤과 달리 중무장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한뎃잠을 자는 것에 몸이 적응을 했기 때문인가? 여하튼 이쯤 되면 나와 남편은 제법 적응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할 만했다. 넉넉하지 않은 식비로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고, 마땅한 이동수단 없이 등짐을 지고 목적지까지 걸어갈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눈 붙이고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환경에 놓여도 웬만큼은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들을 치료하다 보면 아이들의 '불안'을 다뤄야 할 때가 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부족하고 환경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제각각이라 '불안'을 나타내는 행동을 보이기 일쑤이다. 처음 가보는 놀이동산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누워 울며 발버둥 치는 경우도 있고 몸을 들어 빙글 돌려주면 자지러지게 우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징그러운 벌레를 본 것처럼 겁에 질려 도망가는 아이도 있다. 그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잘 먹던 반찬일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에 따라 불안을 느끼는 상황은 천차만별이고 보이는 반응도 제각각이다- 물론 불안 따위 전혀 느끼지 않는 둔감한 아이도 있기는 하다.-. 아이들의 그러한 특성은 아이의 생활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까지도 매우 불편하고 어렵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보이는 불안 내지 두려움의 반응들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대처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은 피하게 해주거나 어떻게든 맞닥뜨리게 하는 것. 그러나 사실 후자를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 아이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거나 자해 또는 공격행동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의 마음으로는 일단 그런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우선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의 격렬한 표현을 지켜보는 것보다 놀이공원 앞을 떠나는 것, 들어 올린 아이를 내려주는 것 혹은 기름기 좔좔 흐르는 동그랑땡을 아이의 눈 앞에서 치워주는 것이 몇 배는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하나씩 둘씩 아이가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아지고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장소도 많아진다. 하기 싫다는 활동도 물론 많아진다. '불안'이 학습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아이는 새로운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어른이 기꺼이 그것을 치워주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그것은 무시무시한 것이 틀림없다는 환상만 키워가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가 아니더라도 본능적으로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움=두려움'의 등식이 성립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늘 나쁜 선생님일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곳에 데려가는 사람, 안아서 빙글 돌려주는 사람 그리고 징그러운 동그랑땡을 먹이는 사람. 물론 '음파'도 못하는 아이를 바닷물에 던질 만큼 악독하고 비윤리적인 사람은 아니다. 어느 때는 놀이공원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앉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고 또 어느 때는 오늘은 10cm, 내일은 20cm 높이를 재가며 아이를 들어 올려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새끼손톱만 한 동그랑땡을 먹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 앞에서 춤을 추며 '곰 세 마리'를 열창해주어야 할 수도 있다.
방법과 속도는 모두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다.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게 하는 것. 내가 던져주는 새로움이 사실 별게 아닌 것을 알게 되고, 별거라 해도 참고 견디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준다는 믿음. 아이와 나 사이에 그러한 신뢰가 조금씩 쌓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환경을 탐색하기 시작하고 도전하기 시작한다. '새로움=즐거움' 또는 '새로움=두렵지 않은 것'으로 등식을 바꿔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보다 항상 더 강했다. 단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 연습이 필요하고 격려와 응원이 필요할 뿐이었다. 경험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아이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통해서 인간의 타고난 강인함을 믿게 되었고 경험의 힘을 믿게 되었다.
오늘 아침 차디 찬 소금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며 느꼈던 묘한 안도감. 그것은 마치 어제 우유니 사막 위에서 남편을 주먹으로 날려버리던 킹콩이 사실은 내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인형임을 아는 것과 같았다. 세상이 온통 하얗고 광활해서 그것의 크기가 어떤지 알 수 없을 때는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불안과 두려움'은 보잘것 없어지고 나는 강해진다. 황량한 땅에 혹독한 추위가 가득 찬 남미의 소금 사막 위에서의 하룻밤도 이제 나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었다.
추운 밤을 이긴 것으로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스름하게 하늘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우리 일행은 소금 호스텔보다 더 차가운 지프에 올랐다. 어차피 물 찬 우유니를 감상할 수 없다면 우유니 마을에 숙소를 두고 여러 번 소금사막에 나가는 것보다 이 사막의 다른 풍경이라도 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판단으로 2박 3일 투어를 결정한 것이었는데 일정이 쉽지 않았다. 아침식사 후 출발해서 세 시간이 넘도록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은 몹시 고된 일이었다.
화산과 여러 호수들을 들렀는데 신기하기는 해도 너무 멋있어서 넋을 놓거나 가슴이 벅차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풍경이 형편없었던 것이 아닌데 뭔가 계속 불편하고 힘든 마음이 들고 시큰둥한 것이 영 이상했다.
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멋있는 풍경인데 왜 내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걸까? 생각을 거듭해보니 생명체가 없는 황량한 이 땅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곳의 환경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삶도 너무 힘들어 보이고 풀 몇 포기 겨우 자라는 버려진 것 같은 땅을 계속 달리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광활함'만은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몇몇 홍학(Flamingo)들이 무리지어 있는 '라구나 콜로라다 laguna colorada'를 마지막으로 두 번째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손님이 우리뿐이었고 여섯 명이 한 방을 함께 쓰는 더 허름하고 작은 숙소였다. 관광 숙소라기보다 대피소의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도 리노와 몇몇 호스텔 직원들이 정성껏 차려준 따뜻한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