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체크아웃을 하고도 우리는 로비에 앉아 두 시가 넘도록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기 쉽지 않은데 다음 여정인 페루 마추픽추로 가는 길을 머릿속에 정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첫날 쿠스코에 묵을 숙소만 겨우 예약해놓은 상태라 움직이려면 몇 시간은 공부를 해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의 여행 준비는 러시아까지가 고작이어서 뿌연 안개 속에서 벽을 짚어가며 더듬거리고 나아가듯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남미 여행은 다들 오래도록 준비를 해서 떠나기 마련인데 이렇게 떠나는 날 아침에 정보를 찾고 있으니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쩌겠나... 지금이라도 잘 챙겨서 가는 수밖에.
쿠스코에 간다고 금세 마추픽추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문제였다. '마추픽추 마을'이라고 불리는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Aguas Calientes'까지 가는 방법만도 여러 가지였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언제나 가장 비싼 방법, 비싼 기차를 타면 친절하게 마을로 데려다 주지만 그마저도 기차역이 쿠스코에 있는 것이 아니니 버스든 택시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뽀로이 Poroy'나 '오얀타이탐보 Ollantaytambo'로 가야 했다. 좀 더 저렴한 방법은 쿠스코 시내의 여행사를 통해 미니버스를 예약하고 '이드로 일렉트리카 Hydro electrica'라는 곳에 내려서 두 시간 정도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산타 마리아 santa maria, 산타 테레사 santa terresa' 등을 거치는 길로, 쿠스코에서 일반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가는 것인데 우리의 육중한 가방을 버리지 않는 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에 도착하고 난 후에도 마추픽추 유적지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갈지 걸어서 올라갈지를 정해야만 했다. 마추픽추는 나처럼 어설픈 완벽주의로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여행지였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이 모든 일이 막상 현지에 가면 별 일 아닌 것임은 경험해서 알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로 전혀 와 닿지 않는 장소에서의 이동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짐이 많아 이동이 고된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짐을 줄여보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보면 또 뺄 것이 하나도 없겠지...
손님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슬슬 배도 고프기도 해서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한 번 옮겼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피자를 시켜서 먹고는 또 페루를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당의 실내도 춥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나마 햇볕이 따뜻한 야외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해가 기울어 우리의 몸은 싸늘한 그늘에 놓여져버렸다. 우리는 가방들을 모두 들고 해가 드는 곳을 찾아 메뚜기처럼 옮겨 다녔다. 이 모든 바보 같은 짓은 우유니에 변변한 버스터미널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외국사람들의 태연함이었다. 우리는 겨울옷을 모두 꺼내 입고도 추워서 벌벌 떠는데 몇몇 사람들은 반팔 홑겹을 입고 거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분명 우유니의 날씨는 똑같은데 체감 온도의 차이는 여름과 겨울쯤 되는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나 캐나다 북쪽 어디엔가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전의 삶이 실재와 상관없이 '지금'의 온도 차를 만든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곳 우유니에서의 시간이 앞으로의 나의 시간, 나의 인생의 온도도 다르게 느낄 수 있게 해주겠지... 이왕이면 따뜻했으면 좋겠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터미널의 버스회사 사무실에 가방을 맡겨놓고 나서야 마을을 좀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뒷골목 상점들이나 음식을 파는 컨테이너들, 꼬치를 구워 파는 리어카들을 둘러보았다. 물건들은 새로운 상품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흘러들었을 중고제품들이 더 많아 보였다. 옷은 이곳 여인들이 입는 풍성한 치마나 손뜨개질로 만든 모자며 스웨터 등이 대부분이었다.
땅이 내주는 것이라고는 소금 밖에 없을 것 같은 이곳의 삶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눈길을 주기에는 너무 안타까울 만큼 어려워 보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며 와보기를 꿈꾸는 곳의 실상이었다. 하지만 또 우리 같은 관광객이 없었으면 정말로 돈벌이할 것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열심히 찾아와 놀아주는 것이 또 이들을 돕는 길이기도 하니 나의 마음가짐은 어정쩡하기만 했다.
저녁 일곱 시, 다시 라파즈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비록 먼지와 매연으로 숨도 쉬기 어렵고 물이 귀하고 난방이 되지 않는 험난한 우유니였지만 물이 찰랑찰랑 차올라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진짜 소금사막을 보기 위해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