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햇빛은 날 선 그림자를 만든다.

by 신지명

새벽 여섯 시가 다 된 시간에 포트 로더데일 Fort Lauderdale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ESTA를 구입해 왔는데 조작도 어려운 기계로 초췌한 내 얼굴이 찍힌 서류를 뽑아 들고서야 입국신고를 할 수 있었다. 매우 디지털화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더 복잡한지 모르겠는 입국 체계다. 미국의 오만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만남이었다.

그래도 그 '오만함'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인터넷을 무료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가방을 찾아들고 나오자마자 가족들 목소리도 듣고 편안하게 앉아 공항을 나서 우리가 가야 할 노선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우리의 삶이 디지털 세계에 속박되어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을 씁쓸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플로리다주의 동부 해변가 도시들을 잇는 'Tri-Rail'을 타러 갔다. 웨스트 팜 비치 West palm beach역으로 가는 길에 마이애미 해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기차는 해변과 멀리 떨어져서 달렸다.
한 시간쯤 달려 기차역에 내렸다. 플로리다의 햇빛은 매우 공격적이었고 후덥지근한 공기는 숨을 쉬기 무서울 정도로 묵직했다. 가방을 들고 조금 걸었을 뿐인데 이미 땀이 흥건했다. 그레이하운드 Greyhound 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터미널 직원은 매우 깐깐하게 남편의 가방 무게를 트집 잡았다. 여지껏은 내 가방이 가벼워 두 개를 합친 무게로 계산해 여기까지 별문제 없이 왔는데 직원은 단호했다. 남편 가방에서 무게가 나갈만한 것들을 덜어 내 가방에 옮겨 넣고 나서야 ok 사인을 받았다.
입을 꾹 다물고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은 조금... 답답해... 보였다. 매뉴얼로 굴러가는 나라, 미국에 왔다.
가방 두 개에 자그마치 16달러나 내야 했지만 버스 출발시간까지 서너 시간이나 남아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가방을 터미널에 맡기고는 밖으로 나섰다.
과감하게 나선 길 위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건물들과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차들뿐이었다.
타들어갈 듯한 햇볕과 아스팔트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도착한 아케이드 시티 플레이스 city place에는 키 큰 야자수들이 즐비했고 도로와 상점들의 청결함과 화려함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열악하고 빈곤한 남미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완전한 반대편, 상업화의 끝점에 서 있자니 괴리감은 더욱 아찔하게 느껴졌다.
모든 상점마다 에어컨을 어찌나 세게 틀어놓았는지 안팎으로 느껴지는 온도 차이가 상당했다. 남편은 자기들은 이런 삶을 누리면서 지구온난화 개선을 목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을 규제한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누려도 너무 누린다는 생각은 나도 지울 수가 없었다. 누리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냐마는 그 삶만이 전부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삶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2015-06-09-22-37-49_2388.JPG
IMG_0056.JPG


상점들을 둘레둘레 구경하고 햄버거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며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버스에 올랐다. 두 시간이 좀 넘게 걸려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다. 직행버스를 미리 예약하지 못한 게으름의 대가로 얼마나 미련하게 미국 바닥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것인지 원...
알아본 바로는 분명 공항 앞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었다. 일단 공항에 비치된 여러 버스의 노선도와 시간표를 잔뜩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공항 밖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며 리무진들이 눈에 밟혔지만 버스비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 몸을 맡겨야 할 만큼 피곤하지는 않았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약골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에이! 그랬다면 여행 자체를 할 수 없었겠지. 찰나 동안 마음을 어지럽힌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공항 밖을 조금 서성거려보았는데 내가 알아본 25번 버스 정류장은 보이지 않았다. 21, 26번 버스만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버스정류장이 있을 뿐이었다. 구글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니 공항 정문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또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도통 길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인지 공항 입구가 너무 넓어서 지도와 눈 앞에 보이는 길을 맞출 수가 없었다. 넓어도 너무 넓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25번 버스에 대해 물었다. 자기와 함께 21번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면 25번 버스로 갈아탈 수 있다고 했다. 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라며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면 잔돈을 만들어야 했다. 미국의 버스는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가려면 잔돈이 조금 부족했다. 갈아타는 곳에 돈을 바꿀만한 곳이 있을지 없을지 몰라 남편이 20달러 지폐를 들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이 사라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21번 버스가 나타났다.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십 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이 버스를 놓치면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아주머니를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선 아주머니만 떠나보내야 했다.
버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아왔는데 아무 말 없이 매우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남편의 두 손에는 은빛을 반짝이는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동전교환기에 지폐를 넣으니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이 25센트 동전이 쏟아지더란다. 이게 뭔가 싶어 난감하면서도 마치 잭팟이 터진 것처럼 경쾌한 소리로 동전이 쏟아져서 신이 나기도 했다며 80개의 동전을 주워 담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일주일 간의 미국 생활에서 동전이 없어서 곤란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IMG_0087.JPG 80개 동전의 일부...


그나저나 버스를 한 대 보내고 다음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이면 25번 버스 정류장을 찾아 한 번에 시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물론 버스를 갈아타지 않는다면 80개의 은화를 손에 쥔 보람도 사라질테지만 말이다.
나는 정류장에 새롭게 나타난 부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물은 그곳이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부부는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곳에 갈 수 없는 이유를 주거니 받거니 설명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일 것까지는 없었는데... 그 상황은 마치 새까맣게 탄 진저맨 쿠키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웠고 그래서 우스웠다. 영화 '덤 앰 더머 Dumb and Dumber'에 나올 법한 사람들처럼 친숙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 이래서 덤 앰 더머가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거였구나... 미국에서는 일상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구나...

우습기는 했지만 친절했던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나서 보기로 했다. 내심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그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공항 밖은 허허벌판이었다. 지도를 보며 십오 분쯤 걸었을까? 멀찍이 떨어진 찻길 건너편에 동그란 표지판 아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이 버스 정류장인 것이 틀림없었다.
공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1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IMG_0081.JPG


버스 안에서 본 미국의 단면은 더욱 '미국스러워서' 흥미로웠다. 역시나 너무나 세게 틀어져있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사람들은 긴 팔을 꺼내 입어야 했다. 한 여자는 음료를 들고 타지 못한다고 제지당하자 풀밭에 과감하게 음료수를 뿌리곤 불쾌하다는 듯 불평을 해대며 버스에 올랐다. 흑인 아저씨는 노래를 하는 것인지 랩을 하는 것인지 모를 리드미컬한 말투로 떠들고 큰 소리로 웃어대며 차 안의 사람들과 기사에게 참견을 했다.
전에도 미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다른 나라들을 오래 여행하다가 와서 그런지 이들 모습이 유독 독특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활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뿐인 것, 그나마도 버스가 몇 대 다니지도 않는다는 것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이곳은 뉴욕 같은 대도시도 아니고 보스턴이나 워싱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뒤섞여 사는 정제된 도시도 아니라서 더 낯설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예전에 미국의 한 노동자가 10년 동안 매일 30km도 더 되는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 사연을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굳이 그런 삶을 살아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버스에 앉아 둘러보니 어쩌면 그것이 미국의 실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미국의 숨겨진 뒷모습.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뒤로 펼쳐진 산을 가득 메운 허름한 집들처럼 말이다.

'자본주의'는 어쩌면 어떠한 희망도 맺히지 않는 거대한 '맹점 盲點'을 깊숙한 곳에 품은 채로 허상을 보고 꿈꾸게 하는 간사한 악마의 눈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5번 버스에서 내려 27번 버스로 갈아타고 숙소 근처라고 여겨지는 곳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내렸는데도 우리는 삼십 분 넘게 걸어야 했다.
플로리다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걷는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차만 가득한 도로를 걸어 도착한 '마리아와 알렉스'의 집은 매우 안락했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집이기는 하지만 방과 욕실이 완전히 분리되어있었고 쾌적했다.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적정 온도'였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허기가 무섭게 찾아와 집 앞 중국집을 찾았다. 사실 집 앞에는 허름한 바와 중국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푸짐한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웠다. 미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IMG_0083.JPG
IMG_0086.JPG


매거진의 이전글페루 리마에서 남미에 안녕을 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