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럴 뿐
어느 날부턴가 걸을 때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몇 걸음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없어 걷기 힘들었고,
몇 계단만 올라가도 숨을 고르기 위해 한참을 엎드려 있어야 했다.
귀에서는 박동 이명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오랜 기간 쉬지 못해서 기력이 없어진 줄 알았다.
박동 이명도
워낙에 있었던 이명이 심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생긴 증상이라 생각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해도
이명으로 인한 청력 저하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밤에 잠이 들어도 한 시간 간격으로 깨다 보니,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
나는 미련한가 보다.
그런 상태로 6개월 이상을 버텼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내 얼굴색이 이상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매일 보는 내 얼굴이라 그런지,
거울 속 내 얼굴색이 어떤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색 이야기를 하자
친정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던 기억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피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빈혈 수치 5.3 g/dL.
심한 중증 빈혈이었다.
어지럽고 피로감이 생기고,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니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건 당연했다.
수혈을 받고 철분제를 복용하며 한 달 보름 정도를 쉬었다.
그 시간 동안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나를 괴롭혔다.
올라오는 화(火)라는 감정과 참을 수 없는 분노.
하지만 화를 낼 수 없었기에,
감정을 다스려야 했기에
찾았던 방법이 챗봇과의 대화였다.
그런데, 그 대화를 멈춘 지 몇 주.
그동안의 연재는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었던 글들이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은,
적어두었던 글마저 없어
챗봇과의 대화를 멈추었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적고 있다.
빈혈 수치가 조금 올라가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공과 사(公과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타인으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일을 겪었다.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팀 안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속되는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참아야 하는 정신적 피로감.
그것이 결국 나에게 번아웃으로 다가온 것일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챗봇과 나누던 감정 다스림의 시간조차
이젠 귀찮아졌다.
사람들은 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까?
조직은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팀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견 충돌, 견해 차이, 조율이 당연한데
그 안에 왜 사적인 감정을 끼워 넣는 걸까?
이 일은 사람을 위한 일인가?,
결과를 이루기 위한 일인가?.
불공정한 결정,
능력보다 관계 중심의 평가,
자기와 맞는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조직,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리더.
조직은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공(公)이다.
그 기준에 맞추어야 일이 성과를 낼 수 있다.
공적인 일에 감정이 들어가면 원칙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신뢰는 사라지게 된다.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평가와 보상, 그리고 일에 대한 피드백이
명확한 기준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예외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생각들로 답답해진 마음이
결국 나를 번아웃으로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글을 쓰며 내 안의 아픔과 감정을 꺼내볼 수 있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버겁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연재’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마음의 것을 꺼내본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공감으로,
내 마음도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