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희망과 시련의 기록

아빠는 자란다.

by 앵그리파파

2023년, 가족여행 차 방문한 강원도 속초 숙소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나는 깊은 잠에 빠진 가족을 뒤로하고 속초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올해도 잘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사업이란 매년 새로운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과정이 아닐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모두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그 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해로 기억될 것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회사는 자체 사업과 정부 용역 사업을 병행했다. 그럭저럭 직원들 월급을 주며 매년 70% 이상 성장을 했다. 아내와 나는 회사를 운영하는 많은 경험을 착실하게 쌓고 있었다. 정부 용역 사업의 경우 목 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실제로 비용이 많이 남지 않았다. 우리는 자체 사업에 더 신경을 쓰자는 결론과 함께 용역 사업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금리가 계속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매출이 발생하면 대부분 대출 이자 처리하기 급급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매출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대출 연체 문자와 독촉 전화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아내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거나 친인척들에게 손을 벌렸다. 그런 과정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구차했고 지난했다. 창업을 하는데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나는 자존심이 바닥을 쳤다. 그 와중에도 정부 지원 자금을 확보해 운영 자금으로 활용했으나, 전반적으로 회사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 게 아니고, 이자 내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 같아.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잘못되고 있었고, 이렇게 사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7년 이상 정들었던 집을 떠나게 되었고, 힘들게 마련했던 아파트도 처분해야 했다. 무엇보다 잘 다니던 아이들 학교를 전학 시켜야만 했다.


아이들을 불러 이사와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둘째는 괜찮다고 했지만, 첫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아내와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이를 설득하려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집은 매도를 위해 부동산에 내놓은 상태였고, 회사도 정리 중이어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첫째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첫째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6개월 이상이 소요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잘못 처리했으면 큰일 날 뻔한 일도 많았다. 그 모든 일들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분이었다.


회사 정리와 이사까지 마친 날, 아내와 나는 술을 한잔하며 미래의 안녕을 기약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졌고,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겼다. 어쩌면 걱정이나 문제없이 평온한 행복만이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 좋은 일들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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