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유학을 준비하다!

아빠는 자란다.

by 앵그리파파

초여름의 강원도 영월은 맑았다. 산세가 우뚝 솟아 있고, 녹음은 상쾌했다. 동강은 붓으로 글자를 휘갈기듯 멋스럽게 흘러갔다. 우리 가족은 영월의 농어촌 유학 면접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면접 후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올라오는 일정이었다. 첫째 아이는 살짝 긴장한 듯,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토악질을 했다. 뒷 좌석에 아이의 토가 낭자했지만, 나는 묵묵히 그것을 치웠다. 그 토악질은 아이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아들, 걱정 마. 아빠가 깨끗하게 치웠어."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제사 화색이 돌았다. 우리 집 댕댕이는 어디에 맡기기 어려워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예민한 아이라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불안해하며 계속 짖었다. 그와 더불어 고객이 계속 아내를 괴롭혔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힘드네... 아무리 말을 해도 잘 듣지 않고 계속 자기 할 말만 해" 하고 읊조렸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머리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푸른 하늘 아래 아이가 면접을 볼 학교가 서서히 나타났다. 마치 진흙으로 빚은 듯한 만화 속 학교였다. "학교가 예쁘다."라고 난 분위기를 띄웠다. 차를 주차하자마자 아이는 두 번째로 토악질을 했다. 난 무심히 다시 치웠다. 아내는 아이에게 갈아입을 옷을 주며 "마지막 티셔츠야" 하고 말했다. 나는 담당 선생님께 전화를 걸고 곧바로 학교 2층으로 올라갔다. 부담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것 또한 우리 아이가 겪어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오밀조밀한 복도를 지나자 "'환영합니다.'"라며 담당 선생님이 인사를 했다. 총 3명이 면접을 진행했고, 우리가 미리 작성해 놓은 면접지를 바탕으로 질문이 오고 갔다. 아이는 긴장한 나머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는 말은 잘했지만, 다리를 떨거나 손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아이는 긴장을 많이 했다. 어쩌면 아이가 긴장하게 만든 것이 내가 분위기를 조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날 면접지 작성을 계속 미룬 아이에게 화를 냈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회사 폐업을 결정하면서 상당한 빚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갔다. 첫째 아이는 전학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아이가 다녔던 학교는 아이들이 착하고, 왕따나 학폭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이를 설득하여 결국 전학을 갔지만,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새로운 학교에서 2개월 동안 심한 놀림을 당했고, 이로 인해 아이는 힘들어했다. 학폭 신고도 했고, 아이에게 자신감을 찾기 위해 운동도 시켰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이 아이가 원치 않는 일을 부모 사정으로 진행했고, 결국 이 사태가 벌어져 나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를 생각해.

내 성격부터 모든 게 다 바뀌었어. 난 예전엔 상당히 활발했었는데.."


"아빠가 미안해. 전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네가 태어났을 때..... 넌.. 정말 완벽했어. 넌.. 너무 사랑스러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죽음을 생각했다. 빚독촉이나 이자 연체 문자가 쏟아져도 죽음을 생각하진 않았다. 아이가 힘든 모습을 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난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아빠는 너 옆에 항상 있을 거야. 이번 일, 잘 정리해 보자."


학교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 자체를 부담스러워했으며, 특히 담임 선생님은 행여 본인한테 어떤 문제가 생길까 방어만 하기 바빴다. 가해학생은 다른 친구들과 더 잘 지내면서 우리 아이를 고립시켰다. 결국 이 학교에 우리 아이를 맡기는 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떠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회사의 많은 빚을 정리했고, 새롭게 설립한 법인의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회사만 잘 꾸리면 모두 잘 해결될 것이라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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