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자란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는 바로는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리고 가셨다. 좁은 방 안에서는 무당 같은 분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계셨다. 어머니는 손을 비비며 무슨 말을 중얼거리셨다. 그 이후로도 어머니는 남녀호랭개교 등 다양한 무속신앙을 택했다가 마침내 기독교로 안착하셨다. 어머니의 삶은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시집살이, 시동생들과의 갈등, 과중한 노동과 폭력적인 남편까지.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종교 즉, 신이었다.
나 자신도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종교적 삶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결혼 후 첫째가 태어날 때, 행복보다는 불안이 더욱 강했다. 내 아이가 태어난 사실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무한한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그 사랑이 문제가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런 내 불안함을 어머니는 잘 아셨고, 끊임없이 종교적 활동을 요구하셨다. 물론 그런 어머니의 행동은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한다. 자식이 행복하게 살 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의 행동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모양새로 변질되었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도 아내와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목사님께서 개척교회에 담임 목사로 가게 되면서, 그로 인해 개척교회 건축을 위한 특별 헌금 활동이 시작되었다. 개척교회의 건축 조감도를 보고 나니 그 규모에 비해 개척교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건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헌금 모금 활동은 계속되었고,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신축 건물을 지으려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결국 교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끊임없이 교회 출석을 요구했다. 그 요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교회를 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회사에 좋은 일인 생기면, 교회를 나가라는 의미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 집안이 안 풀리는 이유가 너네 가족이 교회를 나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더 심했던 건 우리 첫째 아이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되는데,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회사가 너무 어려워 지치고 지친 내게 어머니는 '너네가 집이고 뭐고 다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오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교회를 다니는 것이었다.
가끔씩 리조트에서 대가족들이 여행과 함께 모이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우리 부모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고,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서 손자손녀가 6명이나 된다. 다 모이면 14명이고, 대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본가에서는 그런 가족여행은 없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이 어려운 세상에서 지치고 상한 아들을 위해 그저 힘내라고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 그저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기를 바란다. 어머니와 통화를 안 한 지 수년이 지났다. 어머니는 지금도 이 모든 일들이 교회와의 연관성 때문이라며 나를 미워하신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막내아들이 빨리 깨닫기만을 기도하고 계신다.
나는 늙어가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외곽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며칠 공기 좋은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 부모로서 진정한 독립은 자녀를 그저 믿고 응원해 주고, 어떤 방향성을 강요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자식 역시 진정한 독립은 부모의 정신적 경제적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게 서운하시지만, 어쩔 수 없다. 교회의 타협점이 없는 이상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지금의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바라보며, 현재 내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할지 다시 한번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