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불행의 시작은 아빠의 동생, 삼촌이었다. 호프집 장사가 잘되자 아빠는 일을 계속 벌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봉고차를 사더니, 그 안에 갖가지 인형을 가득 채워 호프집 앞에 세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건너편 공장단지에 위치한 텅 빈 상가 하나를 얻어, 식판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에 각종 마른안주를 담아 인근 가게들에 납품했다. 주변에선 “저렇게 계속 일을 키워도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호프집도, 인형 장사도, 안주 포장 판매도 전부 잘 됐다.
문제는, 하는 일마다 다 잘 된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몸은 하나였지만, 벌려놓은 일들은 계속 늘어났다.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빠는 결국 도와줄 사람을 찾았고, 그 선택은 막내 삼촌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고만 치고, 소개해 준 일자리마다 금방 그만두던 백수 동생. 그런 삼촌이 갑작스럽게 아이를 가지게 되며 가정을 꾸리게 되자, 아빠는 안주 공장을 통째로 삼촌에게 맡겼다. 그리고 2년쯤 지났을 때, 일이 터졌다.
삼촌에게 넘긴 안주 공장이 망했다. 빚이 생겼다. 넘겨줄 거면 명의까지 전부 다 제대로 넘겨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빚은 우리 집 빚이 됐다. 처음 장사가 잘 안되어 빚이 생겼을 때, 그때만이라도 사실대로 다 털어놓았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삼촌은 엄마에게만 이 사실을 말했고, 엄마는 아빠에게조차 숨긴 채,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메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결국 동네 사람들이 직접 우리 집에 찾아와 돈을 갚으라며 소리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도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됐다.
갑작스럽게 절벽 아래로 떨어진 듯한 절망 속에서, 삼촌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아빠는 당연히 함께 책임을 나누며 빚을 갚아나갈 줄 알았기에, 믿었던 동생의 배신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충격은 결국 아빠를 병원 침대에 눕히게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빠는 다행히 엄마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서둘러 발견해, 몸이 마비되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됐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마음이 병들면 몸도 무너지는구나’를 느꼈다.
사실 삼촌의 일은 나에게도 큰 상처로 남았다. 아빠의 형제들 중에서도 내가 유독 따랐던 사람은 막내 삼촌이었다. 안주 공장을 맡기기 전부터 삼촌은 자주 우리 집을 드나들며, 나와 동생을 정말 예뻐해 줬다. 장난감과 용돈은 물론이고, 몇 시간이든 귀찮은 내색 없이 함께 놀아주던 사람이었다.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우던 삼촌은, 어린 내 눈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어른 중 한 명이었다. 부모님 다음으로 믿고 의지했던 존재였다.
그런 삼촌이,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설마 그럴 리 없어’라는 감정이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집이 망하자, 사람들의 얼굴도 바뀌었다. 한때 다정하던 이웃들, 웃으며 함께했던 어른들은 낯선 표정으로 돌변했다.
그 시절, 아직도 선명한 한 장면이 있다. 딸이 없어 아쉽다며 늘 살갑게 웃으며 우리를 집에 초대해 주던 아주머니가, 두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찾아와 빌려 간 돈을 갚으라고 소리쳤다. 현금으로 주고받았고, 차용증도 따로 없던 상황. 그들은 몰래 녹음기를 가져와 대화를 녹음했다. 하지만 금세 발각되었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들과의 사이엔 격한 말다툼이 오갔다. 어린 나는 그들이 너무 야속했고,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라며 울부짖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돈 빌려 가서 갚지도 않는 집 딸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난리를 쳤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관계를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빚을 갚기 위해 애썼지만, 경기는 점점 나빠졌고, 곧 IMF가 터졌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기, 동네 사람들의 빚 독촉은 더욱 거세졌다. 얼마 전까지 활짝 열린 현관문으로 웃으며 왕래했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리 집 문을 두들겼다. 쿵쿵 현관문에서 나는 소리가 빌라 전체에 울려 퍼졌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동생 손을 꼭 잡고 숨을 죽였다.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고,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고함과 쿵쿵거리는 소리가 멈출 때까지, 우리는 납작 엎드려 숨는 법을 익혀야 했다.
집은 날이 갈수록 전쟁터가 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같이 싸웠고, 고성이 오갔다. 처음엔 나와 동생이 울면서 말렸지만,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언제 싸움이 시작될지 몰라 하루 종일 긴장했고, 행복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집은 짧은 시간 안에 생기를 잃었다.
어항 속 물고기와 거북이, 구관조는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었고, 난초는 시들어 검게 변했다. 방문엔 끔찍했던 날의 식칼과 망치 자국이 선명했고, 나와 동생의 방 창문은 부모님의 싸움 중 던져진 물건에 깨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집과 차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처분했다. 호프집도 식당도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빚은 남아있었다. 네 식구의 생활비도 필요했고 남은 빚도 갚아야 했기에, 아빠는 가지고 있던 봉고차를 몰며 학원차량 운전기사를 하셨다. 엄마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공장 식사 배달을 하는 식당에 취직을 했는데 쉬는 날이 거의 없어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부터 싸움이 조금 잦아들었다. 시끄러운 날들보다 조용한 날들이 더 많아지며 나는 상황이 조금 나아진 줄로만 알았지만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예고 없는 이별의 전조였다. 자신을 책망하는 아빠의 폭언과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끝없는 빚독촉에 엄마는 점점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