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 인력사무소를 지나, 꿈으로

by 앙또아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망설이기만 하던 나는 결심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거창한 꿈을 꾸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하루 종일 연필을 쥐고 앉아 있었던, 그 어린 시절처럼. 그림을 그리고 그 일로, 살아갈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느 날, 밥을 먹던 도중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안마원 그만뒀어.” 엄마는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식탁 위 공기는 금세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엄마의 고함과 욕설이 쏟아졌다. “한마디 상의 없이 네 맘대로 일을 관둬? 미쳤어?” 늘 그랬듯, 감정이 먼저였고 언어는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겼다. 마음속에선 수천 번 되뇌었던 단 하나의 문장만이 맴돌았다. ‘이번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야.’ 나는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곧장 파출부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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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걷다 보면, 상가 건물 2층이나 3층쯤 ‘파출부’라 큼지막이 쓰인 간판과 그 아래 조심스레 붙은 ‘인력사무소’라는 글씨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이곳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면 매일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곳이다. 주로 40~50대 여성들이 일하며, 전날이나 당일 아침 전화로 일터를 안내받는다. 대부분 식당 일이다. 직원이 하루 쉬는 날, 하루 대타가 필요한 곳도 있고 개업 첫날, 손이 부족할 것 같아 인력을 쓰는 곳도 있다.


근무시간은 보통 12시간. 손님이 많은 날, 업무 강도가 높은 만큼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일당이 높았다. 단기간에 돈을 모아야 했던 내게, 이보다 나은 조건은 없었다.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가게를 거쳤다. 고깃집, 횟집, 치킨집...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점에서 일했다. 한 번은 엄청 유명한 맛집에 투입돼 점심도 거른 채 하루 종일 싱크대 앞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그릇을 닦았다.


가장 혹독했던 건, 젓갈 반찬이 유난히 많은 돌솥밥 전문점이었다. 치워야 할 그릇은 끝이 없었고, 무거운 돌솥은 손목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닥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좌식 테이블. 하루 종일 양말만 신은 채 바닥을 걸으며 서빙을 하다 보니, 발바닥이 아프다 못해, 부서질 듯했다. 일이 끝날 즈음엔 불붙은 듯 화끈거리는 발바닥을 끌며 겨우 문을 나섰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나는 서빙 일이 잘 맞았다. 손님에게 인사하고, 상을 차리고 치우고,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움직이다 보면 묘한 뿌듯함이 남았다. 가게 사장님들도, 직원들도 대부분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파출부를 해?” 안쓰러워하며 챙겨주는 이들도 있었다.


개업 첫날부터 3일간 일했던 돼지갈빗집 사장님은 내가 일을 너무 잘한다며 스카우트를 제안하셨다. 원래는 비싼 양주를 팔고 여직원이 술을 따르던 유흥업소를 운영하셨는데,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 그 일을 접고 돼지갈빗집을 차리셨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몇 달을 일했다. 그 시간 동안 학원비를 모았고, 학원에 다니며 필요한 경비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캐릭터 디자이너를 꿈꿨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고 계획을 세울 때 꼭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입시를 다시 준비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기엔 나는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고 무엇보다 내게는 주어진 돈도 시간도 여력도 부족했다.


언젠가는 꼭 다니겠다고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던 학원은 시각디자인과 캐릭터 디자인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었다. 각 과정은 3개월씩, 총 6개월. 등록비만 무려 500만 원이 넘었다. 금액을 들었을 때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다.


나는 메모장을 펴고, 학원비 외에 드는 돈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서울까지 왕복 교통비, 하루 5천 원씩 점심값, 교재비, 재료비까지. 대충 계산해도 매달 30만 원은 추가로 들 것 같았다. 6개월이면 180만 원, 등록비까지 더하면 총 700만 원 가까운 금액이었다. 내 통장을 열어보았다. 빠듯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가장 많이 본 메뉴는 단연, 수강생 포트폴리오 게시판. 그곳엔 나보다 먼저 수업을 들은 사람들의 결과물이 빼곡히 올라와 있었다.


개성 있는 캐릭터 디자인, 감각적인 굿즈 시안, 완성도 높은 레이아웃과 색 조합… 하나하나가 정말 ‘프로의 작업물’처럼 보였다. 그 이미지를 클릭하고, 확대해서 보고, 또 다른 사람의 포트폴리오로 넘어가고... 그러다 다시 처음 봤던 작품으로 돌아와 눈길을 멈췄다. ‘나도…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이 가슴 한가운데서 반짝였다.


이 학원은 한 기수가 끝나면 잠시 재정비 기간을 갖고 그다음 수강신청을 연다. 신청자가 많을 경우, 단순한 선착순이 아니라 ‘면접’을 통해 수강생을 선발했다. 그 기준은 단 하나. “얼마나 진심인가.” 그 문장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는 정말 간절했지만, 내 간절함이 과연 다른 이들의 간절함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는 내가 왜 이 학원을 선택했는지, 왜 그림을 배우고 싶은지, 그리고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지를 노트에 조용히 써 내려갔다. 마치 나 자신에게 설득하듯, 그리고 누군가에게 증명하듯.


나의 간절함이, 그들에게 닿았던 걸까. 나는 면접에 통과했고 마침내, 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비로소 내가 가고 싶던 길의 첫 문이 열렸다. 이 문을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망설이며 서성였는지, 이제부터 그 시간을 껴안고 나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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