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이별

by 앙또아


평일 저녁,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카페 창가에 앉아 묵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을 무렵, 내 휴대폰이 ‘지이이잉’ 하고 울렸다. 엄마의 전화였다. “아빠 돌아가셨어. 빨리 집으로 와.” 내가 무어라 묻기도 전에 엄마는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순간 마치 일시정지 버튼이 눌린 듯 모든 동작이 멈췄다.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친구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허둥지둥 일어나 상황을 설명한 뒤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집 안엔 낯선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빠는 평소처럼 작은방에 누워 계셨지만, 그 모습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눈은 감긴 채 얼굴엔 평온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방 안은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장례식장이었다. 엄마는 “찾아올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하며 가장 작은 빈소를 요청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경찰로 일하던 삼촌 덕분인지, 그의 지인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조문을 해왔다. 작은 빈소는 순식간에 가득 찼고, 우리는 결국 더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엄마는 아빠의 영정 사진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사진을 어루만지며 목이 터져라 울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빠 깨끗이 씻기고, 손발톱도 다 깎아줬어...” 그날따라 엄마는 유난히 다정하게 아빠를 챙겼고, 아빠는 연신 “고마워,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하고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울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이 진심일까, 차가운 의심이 들었다. 살아 있을 땐 그렇게 무심하더니, 이제 와서 왜 이렇게 우는 걸까. 장례식 후 조의금을 정산하며 삼촌에게 “이 돈을 왜 네가 가져가? 내 남편 장례식에 들어온 돈이니 다 내 거야!” 하고 소리치는 엄마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엄마에게 아빠의 죽음은 슬픔보다 계산이 앞섰던 것 같았다.


아빠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지만, 우리는 사실상 아빠를 방치했다. 엄마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들어와 “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하고 술주정을 했고, 아빠는 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누워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아빠에게 필요한 건 식단 관리, 운동, 청결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냉장고 속 남은 반찬에 밥만 대충 얹어 내놓았고, 씻지 않아 냄새가 날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씻겨주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청춘을 소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내 몫은 다했다고 믿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학교가 끝나고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했고, 약도 타왔지만, 삶이 버거워지자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둘 엄마에게 일을 미뤘다. 식탁 위 약봉지를 보고 ‘아, 병원 다녀왔구나. 알아서 챙겨 드시겠지.’ 하고 외면했다. 결국 그 무심함이 아빠를 천천히 더 아프게 만들었다.


아빠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심한 사람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학교가 끝난 뒤 집으로 걷고 있을 때면, 가끔 아빠의 학원 차량을 마주쳤다. 조수석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리면, 운전대 너머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골목 모퉁이에 차가 멈추면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엔 라디오 소리만 잔잔히 흘렀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말이 없을 뿐, 마음은 늘 나를 향해 있었다.


아빠와의 따뜻한 기억은 주로 엄마가 가출해 집에 없을 때 생겨났다. 그전엔 늘 바쁘기만 했던 분이라, 얼굴 보기조차 어려웠다. 엄마의 빈자리를 감당하게 된 아빠는 전보다 우리를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한 달에 한두 번 아빠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로 갔다. "먹고 싶은 거 있음 여기다 담아." 그 말에 우리는 신이나 들뜬 얼굴로 마트 곳곳을 누비며 먹고 싶은 것들을 마구 담았다. 마트가 지하에 있었던 터라 계산이 끝나면 셋이서 비닐봉지에 물건을 나눠 담아 계단을 올라갔다. 나와 동생이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낑낑대며 힘겹게 계단을 다 오를 때면 한참을 앞질러 가던 아빠가 어느새 봉고차를 가지고 와 길가에 세웠다. 트렁크에 식재료를 가득 싣고 집으로 향하는 그날만큼은 우리 셋 모두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일주일 내내 나를 따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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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은, 불 꺼진 방 안에 조용히 앉아 계시던 장면이다. 창문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방 안은 늘 어둑했다. TV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만이 아빠의 얼굴을 어슴푸레 비췄다. 시력을 잃어가던 아빠는 더 이상 창밖을 보지도, 먼 곳을 응시하지도 않았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가만히 앉아 계셨다. 마치 시간도, 계절도 그 방에선 멈춘 것처럼.


어느 날, 퇴근한 나를 향해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나... 밥 좀 해줄래?” 나는 냉장고에서 나물들을 꺼내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고,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었다. 아빠는 그릇을 받아 들고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고,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맛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울컥했다. 미안함이 북받쳐 눈물이 고였고, 가슴이 저렸다.


나는 참 이기적인 딸이었다. 안마원에서 시각장애인분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에게 그런 삶을 열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떠난 뒤에야 죄책감과 후회에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건강을 챙겨드렸다면 아빠는 좀 더 오래 살아 계셨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마흔여덟, 쉰도 넘기지 못한 나이에 눈을 감으셨다.


너무 이른, 너무 조용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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