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불안을 데리고 왔다

by 앙또아


나는 말 그대로 ‘춤바람’이 났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퇴근 후엔 곧장 스윙바로 향했다. 아마 동호회 사람들 중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췄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성에는 관심 없고, 그저 춤에 미쳐 있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내가 빠진 건 춤만이 아니었다.


한때 드라마 ‘호텔리어’와 ‘겨울연가’에 빠져 배용준에게 홀딱 반한 적이 있다.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내 이상형은 줄곧 안경 쓴 남자였다. 남편도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첫인상부터 왠지 모르게 호감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는 나를 ‘누님’으로 여겼는지, 말투부터 극존칭이었다. “누나, 밥 먹었어요?”도 아닌 “누나,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식이었다. 나를 전혀 이성으로 보지 않는 듯했고, 나도 그를 그냥 동생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러다 그를 알아갈수록 마음이 점점 깊어졌다. 장난기 있는 눈빛 뒤에 숨은 진중함, 꾸밈없고 허세 없는 말과 행동, 술 한 잔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순한 모습까지. 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심장이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요동쳤고, 결국 나는 고백을 결심했다.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스물 중반을 지나며 나는 점점 연애에 소극적이 되었다. 좋아했던 사람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쌓이자, 상처받기 싫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생겨도 설레기보다 두려움이 컸고, 시작되기도 전에 마음을 접곤 했다.


그래서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을 때도, 처음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움츠러든 태도 때문에 그 인연을 놓치게 되진 않을까? 거절이 두렵다는 이유로 상대의 표현만 기다리는 내가, 오히려 더 이기적인 건 아닐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가 보자.


‘토요일에 뭐 해? 별일 없으면 나랑 밥 먹자.’ 처음으로 단둘이 만나자는 제안이었다. 혹시 거절당할까 봐 불안했지만, 뜻밖에도 그는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는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지방 출신으로, 아는 사람이라곤 회사와 동호회 사람들뿐이었다. 평소에도 기수 형, 누나들과 종종 따로 만난다 했으니, 나 역시 그저 그런 친한 누나 중 한 명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결전의 날, 나는 나름대로 꽃단장을 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타이밍을 살폈지만,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끝내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직접 고백을 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고백은 좋아하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건네는 방식이었고, 중학생 때는 전화를 걸어놓고 끝내 말하지 못해 친구가 대신 말해줬었다.


결국 그날도 아무 말 못 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또 이렇게 끝낼 거야? 다음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마음을 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용기를 쥐어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답장이 왔다.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이성으로서 좋은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자면 무조건 좋다던 남자에게 보기 좋게 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크게 아프진 않았다. 예전처럼 얼버무리거나 피하지 않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한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아, 역시 아니었구나’ 하며 마음을 정리했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를 근거 없는 확신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도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스윙바로 향했다. 처음엔 남편이 나와 마주하는 걸 불편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춤을 췄다. 그런 내 모습에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졌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선도 점점 부드러워졌고, 어느새 나에게 농담을 건네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춤 열정’을 공략했다. 누구보다 잘 추고 싶어 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편은 춤을 먼저 신청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윙바 구석에 혼자 있는 그가 보일 때마다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내 손을 가장 반가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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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거절 이후 석 달쯤 지났을 무렵, 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윙바 한쪽에 나와 나란히 앉아있었고, 춤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는 먼저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왔다. 예전엔 웃을 때도 조심스러워 보였던 사람이, 이제는 내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 눈이 마주치면 피하던 시선은 이제 오히려 나를 오래 바라보았고, 나는 조금씩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조심스레 고백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연애 초반, 감정의 온도가 맞지 않아 겪는 갈등이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사랑에 푹 빠졌지만,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감정이 피기 시작한 경우. 나도 그런 걱정을 했지만, 뜻밖에도 그의 마음은 놀랄 만큼 빠르게 내게 닿았다. 그의 사랑은 망설임 없이 깊어졌고, 곧 나와 같은 온도가 되었다.


우리는 정말 뜨겁게 사랑했다. 처음으로 마음의 속도가 딱 맞는 연애였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허전할 만큼,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퇴근 후엔 그의 자취방으로 자연스럽게 향했고,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은 뒤,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작은 원룸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별일 없이 조용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찼다.


주말이면 손을 꼭 잡고 걷기 좋은 길을 찾아 나섰다. 한강공원을 천천히 걸을 때도 있었고, 근교로 나가 산책 겸 소풍을 즐기기도 했다. 햇살 좋은 날엔 나무 그늘 아래서 간식을 나눠 먹었고, 비 오는 날엔 카페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눈부신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이 커지자, 불안도 함께 커졌다. 이 행복이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금세 사라질 것만 같았다. 예전 연애들은 대부분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기에, 이번에도 비슷한 결말이 오지 않을까 두려웠다. 불안은 점점 자리를 키워갔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엔 진심으로 행복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날 사랑해도, 곧 마음이 식을지도 몰라.” 나는 자주 그렇게 말했고, 그는 언제나 “아니야, 우리는 오래오래 행복할 거야.”라고 다정하게 답했다. 하지만 내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과 불안이 교차하던 어느 날,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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