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우리의 연애가 시작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 두 줄이 선명하게 떠오른 테스트기를 바라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가슴이 뛰기보다 멎는 느낌에 가까웠고,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남편은 이제 막 직장 생활 2년 차에 들어섰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생명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먼저 밀려왔다. 설렘보다는 놀람이, 기쁨보다는 막막함과 책임감이 앞섰다. 하지만 마음만은 분명했다. 우리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은 모태솔로를 갓 졸업한 남편에게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사건이었다. 친구들은 놀라워했고, 시부모님도 당황하셨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임신이 처음엔 혼란과 불안을 불러왔지만, 아이가 생긴 후부터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연애 초반, 남편과 처음으로 사주카페에 갔던 날이 있었다. 마주 앉은 역술인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태어난 시간과 날짜를 물었다. 사주팔자를 훑어본 그는 조용히 말했다. “부모복은 좀 약하네. 근데 남편복이랑 자식복은 아주 좋아.” 사주에는 없던 이야기였지만, 나는 시부모님 복도 있었다.
시부모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전세 자금을 보태주시고, 살림을 꾸리는 데도 아낌없이 도와주셨다. 결혼식 역시 두 분의 전폭적인 도움 덕분에 치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손에 쥔 돈도 거의 없었다. 퇴직금은 이직을 준비하며 흘러가듯 써버렸고, 엄마는 결혼에 단 한 푼도 보태지 않았다. 오히려 내 친구들이 준 축의금을 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결혼식에 와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예식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을 달래며 안도했다.
임신 초기엔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머리로는 아기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식욕이었다. 평소엔 한 그릇 뚝딱 비웠던 내가, 밥상 앞에 앉아 젓가락부터 망설이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먹고 싶은 음식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씹고 삼키면 입안이 금세 텁텁해졌고, 즐겨 먹던 음식들도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히 속이 울렁거리는 심한 입덧은 없었다. 그저 '맛이 없다'는 느낌이 자주 찾아왔고, 어쩌다 입맛에 맞는 음식이 보이면 그때는 또 놀라울 만큼 잘 먹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듯 먹고 자고를 반복했고, 눈에 보이지 않던 작은 변화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내 배는 어느새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고, 나도 점점 내가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임신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단연 잠이었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단 한 번도 깊게 잠든 기억이 없다. 등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파 두세 시간마다 잠에서 깼고, 깨어난 뒤엔 다시 잠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눕기를 반복했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차라리 얼른 낳고 말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배 엄마들이 남긴 생생한 출산 후기를 읽을수록 두려움도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나는 농담처럼 남편에게 말했다.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운 건 나니까, 낳는 건 당신이 해.” 남편은 웃으며 “출산 후기 좀 그만 봐”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붙든 채 후기 속 문장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마가 겁을 잔뜩 먹어서였을까. 예정일이 지나도 아기는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아이가 이미 큰 편이라 더 미룰 수 없다며 유도 분만 날짜를 잡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쭈그려 앉아 걸레질을 했다. 등에 땀이 맺히도록 거실과 방바닥을 닦으며 '이러다 아이가 툭 하고 내려오는 건 아닐까' 기대했지만, 아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유도 분만을 하루 앞둔 날. 남편과 나는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말도 안 되는 속설 하나가 자꾸 머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삼겹살을 먹으면 아기가 기름에 미끄러져 잘 나온다더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
우리는 고기를 굽는 내내 웃었고, 그 웃음 뒤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 여러 점을 상추에 올려 크게 한입에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 무렵, 배가 싸르르 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진통이, 드디어 찾아왔다.
나는 원래 생리통이 심한 편이라, 이번 진통도 그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만 점점 강도를 더해오는 통증이었다. 배를 감싸 쥐고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아직 새벽이었고, 병원 예약은 아침 8시. 진통이 막 시작된 걸 직감했기에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누워 눈을 붙였다가 통증이 오면 깨고, 다시 잠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새벽 6시가 넘어서야 나는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남편 곁으로 갔다. 그는 깊게 잠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 “여보... 나 샤워 좀 하고 나올게. 준비하자.” 남편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더니, 내 말뜻을 곧장 이해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의 얼굴에 긴장과 걱정이 번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말없이 짐을 챙겼고, 샤워를 마친 뒤 나란히 택시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오전 8시.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고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였다. 생리통이 어쩌고 하는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온몸이 뒤틀렸고,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침대 손잡이를 꽉 쥐었다가 놓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가 다시 바로 눕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 서 있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눈을 감고 진통을 참는 내게 그가 살며시 다가와 물었다. “지금은 어때? 좀 괜찮아?” 나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못 하겠어요… 나, 아기 못 낳을 것 같아요.”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자,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무통도 어렵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힘내셔야 해요.” 눈앞이 핑 돌았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은 부서질 듯 아팠고, 마음은 이미 바닥까지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딱 한 번만 더 힘을 주면 끝날 거라는 말 하나에, 남아 있는 기운을 모두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울컥하는 감각과 함께 따뜻한 무언가가 배에서 분리되었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딸이에요.”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그제야 온몸의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의 진통 끝에, 3.8킬로그램. 건강한 딸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끝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나이에, 가장 큰 사랑이 작고 따뜻한 선물이 되어 내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