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성애가 넘쳤다는 엄마들도 많지만, 나는 전혀 달랐다.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병원에서 초음파로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도, 또렷한 머리와 팔다리가 보이는 사진을 받아들었을 때도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뿐, 어떤 특별한 감정이 올라오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히 앉아 있다가 뱃속에서 불쑥 무언가가 꿈틀하고 움직였을 때. 그제야 ‘아, 진짜 누가 안에 있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움직임조차 낯설고 어색했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영화 ‘에일리언’ 속 장면이 떠오르며 묘한 이질감이 몰려왔다.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흔히들 말하듯,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눈물이 쏟아지고 사랑에 빠지는 그런 드라마 같은 장면은 내게 없었다. 의료진의 손에서 건네받은 작고 붉은 아이는, 막 세상에 나온 누군가일 뿐, 아직 ‘내 아이’라는 감각조차 또렷하지 않았다. 쑥 꺼진 뱃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낯선 생명체. 작고 여린 숨소리를 내며 품에 안겨 있었지만, 오히려 그 작음과 생경함이 어쩐지 나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이 아이를 낳은 게 맞나? 이 조그만 존재가, 아까까지 내 몸 안에 있었던 거야?’ 아이는 분명 나에게 왔지만, 마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누군가는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벅찼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멍하고 낯설었다.
오히려 더 현실 같았던 건, 새벽마다 수유하느라 깨어나는 순간들이었다. 젖을 물리고 졸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기저귀를 갈다 내 손에 묻은 묽은 똥을 닦아내며, 울음소리를 따라 안아주고 재우며... 그렇게 하루하루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안의 감정도 천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모성애는 한순간에 가득 차오르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만든 날들 속에서 조금씩, 차곡차곡 자라났다.
딸이 갓난아기였던 시절, 엄마라는 이름이 나와 잘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낯설고 어색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불안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모를 싫어하면, 결국 그 부모를 닮게 된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도 내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아이를 외롭게 만들고, 감정에 휘둘려 소리를 지르고, 자꾸만 상처를 주게 되진 않을까.
그 불안은 깊은 밤, 불 꺼진 거실에서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가장 선명했다. 세상이 조용할수록 내 안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나는 삶의 또 다른 벽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육아에 관한 책,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감정 조절과 애착 형성에 관한 이론들이 적혀있는 다양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리고 미디어 속 전문가들이 전하는 ‘올바른 부모 되기’에 대한 조언들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엄마가 되는 방법을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딸은 ‘육아 난이도 하’의 아이였다. 낯선 곳에서도 금세 잠들었고, 어떤 음식이든 잘 먹었다.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치과에서도 태연하게 입을 벌렸다.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면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금세 친구가 되곤 했다. 물론 떼를 쓰는 순간도 있었지만, 훈육하면 곧 차분해졌다.
솔직히 말해, 내 육아는 ‘대충’의 영역에 가까웠다. 책에서 배운 대로 언어와 정서, 사회성을 키우기 위한 소통은 노력했지만, 그 외의 많은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는 원칙 아래 움직였다. 이유식도 그랬다. 처음에는 직접 만들어봤지만, 정성껏 만든 음식이 대부분 그대로 버려지는 날이 이어지자 마음이 지쳤다. 대신 다양한 식재료가 담긴 이유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였다. 남기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내 손으로 만든 것을 버릴 때 느끼던 허무함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식판을 조용히 치우고, 다음 끼니까지는 따로 챙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다시 차려주는 게 귀찮았다. 아침마다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먹으니, 간단히 먹고 가도 괜찮겠지 싶었지만 딸은 늘 밥과 반찬, 국이 있는 ‘제대로 된 밥상’을 원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몸매 관리에 관심을 가지더니, 요즘은 계란 프라이에 과일만 챙겨 먹고 등교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이제는 계란프라이 정도는 스스로 뚝딱 만들어 먹고 학교에 간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는 ‘공부도 재능’이라는 말을 믿는다. 남편도 나도 공부를 그럭저럭했지만 특별히 뛰어나진 않았다.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역시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딸은 지금까지 본인이 가고 싶은 학원만 다녔다. 태권도, 수영, 피아노, 기타, 배드민턴 정도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는 이해해야 하니 문해력과 살면서 기본 계산은 할 줄 알아야 하니 연산을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가끔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수학이나 영어 학원 한번 다녀볼래?” 그러면 딸은 기다렸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학원 다니면 숙제가 너무 많잖아. 나는 집에서 푹 쉬는 게 더 좋아.” 말을 꺼낸 지 3초도 안 돼 “싫어, 안 가! 절대 안 가!” 하며 손사래까지 친다. 마치 무서운 데 데려가려는 줄 아는 얼굴이다. 누가 보면 학원에 치여 살다 이제야 겨우 숨 좀 돌리는 아이인 줄 알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난다.
지금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곧 중학생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개구쟁이에 밝고 명랑하며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조금은 대충’ 키울 생각이다. 무언가 필요하다고 먼저 챙겨주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지켜보다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조용히 손을 내밀 것이다.
나는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알아가길 바란다.
누군가는 내 육아 방식을 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키우면 좋은 대학 못 갈 텐데.” “나중에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은 힘들 거야. 대기업은커녕, 변변한 직장도 못 잡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딸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나 대기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딸의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니까. 무엇을 하든 스스로의 힘으로 일하고, 당당하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 인생에 일일이 참견하며 살기엔 나는 아직 나를 키우느라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