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형태

프리랜서 도전기

by 안해

방송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방송국에서 나온 대신 나는 여행사에 들어갔다. 사람들에게 방송국을 나와 여행사를 들어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내 삶에 진 기분이 들었는데, 거칠지만 열정이 넘치는 방송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한풀 꺾여서 제 발로 스스로 나온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방송국 생활이 너무 무지막지하고 열악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에 따라 나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갔다. 무엇보다 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었다. 텔레비전에서 어떤 것이 흘러나오든 나에겐 그다지 의미 없는 것일 뿐이었다. 작은 것이라도 지면에 활자로 찍혀있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내가 방송국 생활을 청산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였다.



여행사는 언젠가 한번 일하고 싶은 곳이었고, 마침 운이 좋게도 스토리텔링 작가를 뽑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OP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관련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기회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전문적인 각 나라의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며 글을 썼고 스토리텔링보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공부와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이런 (나름) 이상적인 일도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바로 그것은 회사라는 ‘소속’ 때문이었다. 회사는 돈벌이를 하면서 경험주의자에게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고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힘들었다. 만원 지하철에서 아침마다 피곤에 절어 출근을 할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곤 했다. 재택근무나 혹은 집근처 카페를 가서 일하게 되면 1~2시간은 더 잘 수 있는 것은 물론, 출근하느냐 애쓰며 일어나지도, 남의 눈을 생각하며 화장하고 옷을 입어야하지도, 버스나 지하철이 놓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만원 지하철에서 40분간 서서 가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소속은 여러 의무감을 선사했다. 그것은 소위 '현타'를 느끼는데 적합한 것들이었는데, 이를테면 회사에서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도 입가에 미소를 띠우려고 노력해야 했고, 돈 주는만큼 적당히 열정을 쏟아 붓고 싶은데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아무런 표정 없이 메신저로 치거나(혹은 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라고 티내야 했고_동료들간 상사에게 더 잘보이기 위한 신경전이 난무한다), 의무적으로 고정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는 동시에 식사를 챙겨야 했고, 윗사람들만 즐거운 회식 자리에 참석해야했고, 참석하지 못하면 '담타(담배 타임)때도 중요한 이야기나 결정을 한다는데, 나 없을 때 무슨 얘기라도 한 거 아닌가' 하며 회식 후 다음날 한층 더 끈끈하고 걸걸해진 이들의 괜한 눈치를 봐야했다.



나는 점점 이런 생활에 환멸과 갑갑함을 느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일상에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는 일 자체가 힘든 게 문제였을 뿐, 그 외의 상황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가령,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다는 게 문제가 되긴 하지만, 출근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하면 됐기 때문에 아침에 몇 초 차이로 버스를 놓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 따위는 없었다.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내가 있었던 곳은 상사가 사무실에 상주하지 않아서 일의 진행 상황을 오로지 메신저로만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회의가 있는 날만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했다. 매일 출근은 하지만 상사를 마주치지 않았고,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팀의 또래의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갔다. 그러니 회식도 자주 하지 않을 뿐더러 하게 되면 '점심 회식'을 했다. 점심 회식! 정은 좀 없어보이지만 근무 시간도 줄어들고 내 시간은 그대로이고, 다음날 비틀거리며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은 문화인가!


사실은 지금 다니는 직장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여행사인 만큼 다른 곳보다 회사 분위기가 자유분방해 복장도 편하게 입어도 되고, 회식도 강제가 아니다. 특히 우리 팀은 상사와 다른 공간에서 작업해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상사와 동료들도 다른 집단에 비하면 유연한 태도와 유순한 성격에 속한다. 그래서 그나마 자위하며 일하고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견디기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유분방하다지만 유독 고요하고 건조한 사무실이 여간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게 아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함이 온종일 사무실을 감싸고 있는데, 카페에서 종종 일하는 게 익숙한 나에게 그 적막함은 유독 지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월200정도는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길 희망한다. 유튜버, 자유기고가, 책방 주인 등 직장을 다니지 않고 밥벌이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예전(이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과 다르게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요즈음은 회사를 뛰쳐나와 자신이 좀 더 돋보이고, 행복감이 충만한 일을 밥벌이로 삼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일부 성공사례를 우리가 접하게 되면서 더 이상 직장이 주는 무게와 가치는 이전과 다르다. 직장이 우리의 삶을 담보해주는 것이 아닌, 우리 안에 있는 그 꿈틀거리는 무엇이 백세 시대 우리의 인생을 담보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3년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한창 퇴사 열풍이 불 당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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