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좋은 영화는 글을 부른다. 작년 8월 개봉한 이 영화는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 사이로 영화 포스터와 함께 종종 회자되었다. 제목도 매력적이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어떤 결의 내용일지도 대충 예상이 가기도 했다. 사랑을 하며 자신을 더 알아가고 스스로가 더 깊어지는 그런 이야기랄까.
(스포 주의)
스물아홉 의대생 율리에는 의학 공부에 회의를 느낀다. 자신은 지적인 매력에 끌린다고 심리학을 전공을 바꾸지만 이내 이것도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시각적인 자극에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엄마에게 파격 선언을 한다.
“사진 공부를 하고 싶어!”
엄마는 놀라지만 묵묵히 그녀를 응원한다.
포토그래퍼로 일하며 아직 정착하지 못한 율리에는 서점에서 일을 한다. 낮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중고서점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였다.
연상의 애인은 만화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집에 얹혀살며 그의 애인 역할을 하기에도 가끔 벅차 보인다. 무슨 일을 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율리에가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장면이 마음을 찔렀다. 익숙한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볼 때 매우 난감하다. 작가라고 대답해야 할지 서점인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율리에도 딱 그래 보였다. 사진가라고 말하기엔 아직 자신의 커리어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사진으로 생계유지를 하지 않는다.
율리에는 성공한 애인 옆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의 기분을 느낀다. 자신보다 연상에다 안정적인 생활을 이룬 애인은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율리에는 언젠가 결혼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마음을 애인에게 알린다.
율리에는 성공한 애인의 존재가 이제 차츰 부담스럽다. 그때 결혼식장에서 새로운 남자, 에이빈드를 만난다.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지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묘한 거리를 둔다. 하지만 저녁에 만나 아침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서적 외도를 한다.
얼마 뒤 율리에가 일하는 서점에 우연히 에이빈드가 찾아온다. 자신을 의사라고 속인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눈치를 보며 숨으려고 하는데 마음 같이 되지 않는다. 그때 에이빈드의 에인이 율리에에게 ‘그린 요가’ 책이 있는지 묻는다. 그제야 둘은 재회를 한다.
놓고 온 것이 있다며 서점으로 다시 돌아온 에이빈드는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었다며 자신이 일하는 곳을 율리에에게 알려준다. 율리에는 악셀을 두고 잠시 에이빈드를 만나러 그가 일하는 카페로 달려간다. 완벽히 사랑에 빠진 여자의 표정이었다.
율리에는 악셀과 이별을 고하고 에이빈드의 집으로 옮겨와 함께 산다.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에이빈드와 생활이 만족스러워 보인다. 애인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지도, 조연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율리에는 곧 그가 불만족스럽다. 더 나은 꿈이나 목표를 갖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성실히 보내는 삶이 전부인 그가 답답하다.
우리 삶은 늘 이렇다. 어느 한쪽은 너무 과하고 어느 한쪽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하는 말은 “둘을 섞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에이빈드와 소원해질 때쯤 율리에는 악셀의 투병 소식을 듣는다. 악셀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악셀이 그녀와 헤어질 때 한 말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와 같이 대화하며 웃는 연인들을 많지 않아. 넌 곧 후회하게 될 거야.” 그녀는 요즘 대화하는 사람이 많이 없고 갑갑하다고 했다.
그리고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아이를 갖는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둘 다 아이 없는 삶을 원했기에 율리에는 임신 소식에 두려움을 느낀다.
율리에는 죽어가는 악셀과 그의 남은 생을 함께 보낸다. 악셀을 보내고 율리에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하혈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율리에는 사진작가가 된다. 서점은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던 에이빈드도 다른 여자의 아이 아빠가 된다.
세월은 흐르고 자신도 타인도 변했다. 율리에는 더 이상 애인의 집에 얹혀살지 않는다. 독립된 자신만의 집에 산다. 율리에는 이전과 다르게 단단해 보인다. 그녀도 자신의 현재가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이 영화는 율리에의 성장기였다.
영화를 다 보고 아쉬웠던 건 제목이었다. 처음에 이 영화를 이끌었던 제목이 다 보고 나서는 결점으로 다가왔다. 영화의 결말과 영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원제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남자를 바꾸고 직업을 옮겨가는 율리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제보다는 한국판 제목이 훨씬 세련되고 매력적이지만 한국판 제목은 영 영화를 다른 느낌으로 만들었다. 로맨스는 낚시일 뿐 율리에의 성장담이었다.
이제는 남자나 애인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생계를 유지하게 된 한 여성. 영화에서 율리에는 마지막에 웃는 얼굴이 아니었지만 이전과 다른 강단이 느껴졌고, 자신의 힘으로 세운 삶에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
계속 직업과 하고 싶은 일이 바뀌었던 나의 모습과 율리에가 자꾸 겹쳐 보였다. 이십 대 다른 직종의 세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한 분야를 도전하고 개척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율리에는 아마 그러한 혼란스러운 지점을 마주했을 테다. 나이는 이미 스물아홉, 서른에 이르렀는데 아직 된 것이 없다. 불안과 초조함을 느낀다. 지금의 내 상태가 딱 그렇다.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와 압박. 남들은 승진을 하고 집을 넓히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는데 나만 계속 불안정하고 헤매는 모습.
나도 언젠가 서점을 그만두고 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상상을 해본다. 가능성을 꿈꿔본다. 영화는 율리에는 통해 희망이 있다고 좀 더 힘을 내라고 내게 말하는 걸까.
많은 청춘들은 외롭고 여전히 방황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고 주변은 변하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아 불안하다. 율리에처럼 이런 노력도 해보고, 저런 노력도 해보지만 이 일도 저 일도 내 일 같지 않고 내 맘 같지 않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조금 더 용기 내보라고, 나다워지는 일을 포기하지 말고 좀 더 버텨보라고, 영화는 율리에의 삶을 빌려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