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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해 Mar 07. 2023

돈이 없어도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우리는 종종 ‘그게 밥 먹여줘?’라는 말을 듣는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질이 있으면 정신이 유지되지만 물질이 부족하면 정신은 무너진다. 내 정신을 모두 물질을 세우는데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삼십 대가 되면서 나도 모르는 인생의 짐이 부과됐다. 이대로 내 원하는 대로만 살다가 나이 들어서 후회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었다. 그 후회는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꼴리는 대로 살았기에 다른 것은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돈 없는 중년이 되어 부모 부양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넉넉하지 못한 재정 상태에 부모에게 여유 없는 태도를 보일 때면 자괴감이 올라온다. 시간이 지나 부모가 더욱 쇠약해지고 일할 수 없는 상태, 나에게 모두 의지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어떨까. 나는 나를, 나의 글을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던 당시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매년 500파운드가 지급되도록 재산이 상속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둘-투표권과 돈- 중에서 돈이 더 무한히 중요해 보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지요.


그전까지 나는 신문사에 잡다한 일자리를 구걸하고 여기에다 원숭이 쇼를 기고하고 저기에다 결혼식 취재 기사를 쓰면서 생계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봉투에 주소를 쓰고 노부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조화를 만들고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철자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몇 파운드를 벌었지요.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지금도 여겨지는 것은 그 당시 내 마음속에서 싹튼 두려움과 쓰라림의 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부득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고 또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 하나의 재능- 작은 것이지만 소유자에게는 소중한- 소멸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 나의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나무의 생명을 고갈시키며 봄날의 개화를 잠식하는 녹과 같았습니다.


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p.63-64





울프는 솔직하다. 여성에게 최초로 참정권이 주어졌지만 자신에게 매년 500파운드 이 주어지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한다. 아마 실제로 그녀의 살결에 닿은 현실이 그랬을 것이다. 투표권보다 500파운드를 돈에 쥐었을 때의 현실이 더 부드럽고 달콤했다. 그녀가 돈을 갖자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방해받지도, 남성에게서 무시받지도 않게 되었다.


커피를 갖다 주는 웨이터도 그녀에게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녀가 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노예처럼 아부하고 아양을 떨며’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력과 노동이 끝나면서 증오와 쓰라림도 함께 끝났다.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참으로 놀랐다. 그녀는 돈을 소유하며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경험이 아주 놀랍다. 아마 돈을 상속받지 못했으면 죽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는 진실이었을까.


내 친구 중 몇몇은 이미 앞으로 자신 앞으로 물려받을 집과 자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면 난 부모가 빚만 안 남겨주고 내게 손 벌리지 않는다면 고마운 현실. 내 상황과 재능 모두 울프보다 열악한 듯싶다.



가끔 나는 헷갈린다. 내가 하는 걱정이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걱정인지 불필요한 과도한 걱정인지.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왔다. 사회가 제시한 방향보다 내가 고민하고 선택한 방향을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혼란스럽다. 과연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얼마나 없어도 괜찮은지. 세상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 그냥 많은 게 좋은 거고 없는 게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p.158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p.160




그녀에게 충분한 돈은 연 500파운드였다. 그럼 나에게 필요한 충분한 돈은 얼마일까? 주머니에 충분한 돈이 있으면 예술을 하는데 정말 자유로울까? 근심 걱정 없이 더 글이 잘 써질까? 돈과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능력 부족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솔직히 돈까지 신경 쓰며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이래서 국가에 의해서 예술가의 생계를 보장, 지원하는 제도를 요구하나 싶지만 국가에게 그런 의무를 바라는 건 우리나라에선 아직 어린아이 떼쓰는 소리로 들린다.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고 글을 쓰기 위해 방구석에 틀어박힌 예술가가 되고 싶은데. 현실을 온전히 살아내고 세상을 즐기기 위해선 울프의 말대로 넉넉한 돈을 소유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경제경영 자기 계발서를 읽어야겠다고 다짐만 몇 년째. 한 자라도 더 읽고 써야 할 시간에 돈 벌 궁리를 하는 게 아까워 아직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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