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 한 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때였다. ‘결국 인정받지 못한 무명배우야.’라는 생각에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자기 연민과 자책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농장>에서 불법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고발장면을 보게 됐다. 동물을 물건 다루듯이 이리저리 옮기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 장면이 며칠 동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던 중 모르는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불현듯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처음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어떤 세상 속에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는 한 사람, ’ 박연’. 나는 주인공을 그녀로 정했다. 그냥 떠올라서 지어준 이름이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텅 빈 세상에 힘 없이 서 있는 한 여자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통해 말을 했다. 그녀를 대신해 보이고 싶지 않은 나약함을 드러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속삭임을 쓰는 일은 나를 위로했다. 머릿속 에선 시도 때도 없이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고 갈등을 일으켰다. 모든 게 허용되는 세상이었다. 나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너 배우가 연기 잘한다고 돈 받는 거 같지? 아니야. 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돈 주는 거야,”
대기가 길어지던 어느 촬영장에서 선배가 웃으며 던진 한마디였다.
배우는 기다림의 직업이다. 현장도, 작품도, 기회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나는 회복한다. 이야기가 완성되면 또 다른 내가 태어난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는 그 존재를 보며 나는 다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주인공의 법칙 하나, 욕망을 꺾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