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52.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판단 자체를 하지 않고, 그리하여 우리의 정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일이든 우리에게 그 일에 대한 판단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52
집을 둘러보며 빈 벽을 찾았다.
5단 책장을 하나 더 넣으려는데 어디가 좋을까, 컴퓨터와 tv 모니터를 밀고 이쪽에 세울까, 윤우 방에 하나 넣을까 고민을 한다.
‘회전 책장을 입구 쪽으로 옮기고 그래, 여기 넣는 거야.’ 혼자 이리저리 구상을 해 본다.
강제성을 띠고 있긴 하지만 초등 아들 둘은 저녁마다 책 읽기를 하고 있다.
이제는 책 읽고 쓰는 게 조금 재밌다고도 하고, 읽는 책이 반복되니 재밌는 책을 계속 넣어주고 싶다.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 반납할 때마다 사탕과 초콜릿 같은 선물을 주나 보다.
선우, 윤우도 종종 받았다고 얘기하길래 말했다.
“그래~ 도서관에 책 많지?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많이 빌려 봐~”
그랬더니 윤우가 곧장 말한다.
“엄마! 도서관보다 우리 집이 책 더 많아!”
그럴 리가 있겠냐며, 없는 책 많이 빌려 보라고 했다.
집에 책밖에 없다, 책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도 안 좋다는 얘기는 거실을 서재화 시킬 때부터 들었다.
앉아서 앞을 보고, 옆만 봐도 ‘아! 저 책! 다시 읽고 싶은데! 이것만 보고 다음은 저거 봐야지!’ 하는 책이 수두룩하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이 뒤섞여 있는 책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다.
저곳에 나를 즐겁게 해 줄, 위로해 줄 존재가 잔뜩 있으니 왠지 모르게 힘도 난다.
신문을 읽다가도, 영상을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읽고 싶은 책이 생긴다.
사서도 보고, 도서관에서도 빌려보고, 전자책으로도 다운 받아 보고.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을 손에 놓지 않으며 지낸다.
읽으면 읽을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상대 감정 못지않게 내 감정도 잘 살피고 이해하려 한다.
시선이 자꾸 안으로 향한다.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큰 타격이 없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 집을 화분이라고 했을 때, 집을 채우고 있는 책은 좋은 거름, 그 속에 사는 우리는 건강하게 피어날 씨앗이라 생각한다.
어떤 일에 판단하도록 강요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타인이 나를 향해 판단할 권한도, 거기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나부터도 ‘저 사람은 저래.’ 판단하지 않고 ‘저 사람은 저렇구나.’ 이해하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