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53.

by 안현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가능한 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너의 몸에 배게 만들어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53



선우의 일기를 읽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윤우와 은서는 자고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선우가 쿵쿵 거리며 일기장을 가방에 넣고 자러 들어갔다.

‘어? 일기는 아까 썼었는데…?’

싸한 느낌을 받으며 나중에 슬쩍 꺼내보았다.

가방 옆에 쭈그려 앉아 두 페이지 가량의 일기를 몇 번이고 읽었다.

그날 저녁 있었던 일이, 아이 시선에서 본 엄마의 모습과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기였다.

동생과 엄마에 대한 화, 억울함이 글 속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부끄러워서 숨고 싶기도, 자는 아이를 깨워 당장 사과하고 싶기도, 그냥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글로써 감정을 쏟아낸 게 기특하기도 했다.

순조롭게 지나갈 것 같았던 저녁은 모두가 상처받은 채 마감되었다.

밤에 남편과 통화하며 얘길 하는데 선우 일기 내용을 듣더니 웃는다.

‘애들이 엄마 말도 안 듣고 화나게 했겠지, 괜찮다,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다, 넌 좋은 엄마다….’와 같은 위로를 건넸다.

그리곤 선우한테 편지를 써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생각만 했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썼다.

아침에 일어난 선우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편지도 읽고, 엄마의 사과도 듣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오탈자로 뒤범벅된 격앙된 일기를 볼 선생님께는 조금 부끄러워지지만 이것도 선우의 소중한 글이니까(흑흑).

어제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아이들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

중재를 했어야 했다.

아이 마음이 안 좋을 거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가능한 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너의 몸에 배게 만들어라.’ 이 한 줄이 바로 어제의 내게 하는 말 같다.

필사하면서 ‘네….’ 숙연하게 대답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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