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26.
하지만 네가 어떤 것들에 대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판단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비뚤어진 시각을 지닌 자들을 용납하기가 한층 더 쉬워질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26 중에서
여성 가족부에서 온 우편을 받았다.
며칠 전, 선우가 우리 집 근처에 나쁜 아저씨가 산다고 친구가 얘기해 줬다고 했다.
우편을 보자마자 선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상했던 대로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였다.
이사 오기 전 집 근처에 살던 그 사람이었다.
친구에게 얘기를 들었던 터라 아이들은 더 궁금해했다.
사진은 왜 앞, 옆으로 다 찍은 건지, 어떤 잘못을 한 건지, 왜 감옥에 안 있고 여기에 있는 건지 물었다.
“착하게 생겼는데….”
하는 말도 한다.
최근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를 보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허술한 법을 우습게 여기고 반성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화가 났다.
단지, 드라마 속 자극적인 얘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게, 영화 드라마보다 더 끔찍한 일이 사실이라는 게 무섭다.
사회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만 같다.
오늘 문장을 필사하면서 생각해 봤다.
잘못을 저지른 것에도 가볍고 무거운 게 있지 않을까?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
무엇이 선하고 악하고를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닐까?
지난 주말, 아이들과 과학관에 갔다 왔다.
다양한 부모들과 마주치고 스쳐갔다.
각자 아이들을 챙기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아이를 향해 카메라를 눌러 대고, 같은 곳을 보며 설명하고, 옆에서 해볼 수 있게 도와주고, 아이 이름을 부르고, 웃었다.
지치지만 무해한 존재인 아이들로 가득한 그곳이 천국인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어르신들은 점점 어린아이들 보는 게 어려워진다며 은서가 지나가면 예뻐하신다.
맑고 고운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 사회에 내 보내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임무다.
어렵고도 행복한 임무를 오늘도 시작하면서, 비 오는 금요일을 기분 좋게 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