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27.

by 안현진

네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마치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도리어 네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눈을 돌려서, 네가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워하고 갖고 싶어 했을지를 생각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27 중에서



오늘 필사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있다.

이번에 나온 아이폰 15 핑크.

지금 쓰고 있는 12 미니도 충분히 잘 쓰고 있기에 새로 나온 15는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실물로 핑크 색상을 본 후로는 한 번씩 떠오르다가 갖고 싶었다가를 반복 중이다.

13 미니에서 핑크 색상이 나왔을 때는 너무 옅어서 흰색과 큰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번 핑크는 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 색깔이었다.

처음 폰을 갖게 된 이후부터 성능보다는 예쁜 디자인과 분홍색(없으면 흰색) 색상을 1순위로 봤다.

내 마음에 들어야 물건도 애착을 갖고 오래 썼다.

원하는 바가 확실했다.

타협을 해서 다른 걸 사면 오래가지 못했다.

스마트폰 디자인과 색상이 일반화되면서 분홍색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삼성 노트북도 분홍색을 썼었는데 지금은 맥북에어 만이 유일하지 않던가.

한결같이 분홍색을 좋아하는 나지만, 최신 스마트폰을 척척 바꿀 만큼 여유도, 배포도 크지 않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다가 지금처럼 아이폰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 본질보다 화려한 겉모양에 속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 밑줄치고 ‘아이폰 15 핑크에 넘어가지 말지어다!!’라고 적어놨다.

아이폰에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게 se 1세대 로즈 골드다.

3년 전, 색깔 빼고 모든 게 충족되던 12 미니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갖고 싶은 욕망과 최신 스마트폰은 안 돼, 멀어져야지 오히려 더 손에 쥐어선 안 돼, 블랙베리 고쳐서 쓰거나 다른 걸 알아봐 하는 이성 사이에서 끙끙 앓았다.

남편이 깜짝 생일 선물로 사주면서 두 달 가까이 앓던 번뇌도 사라졌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마음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마음 덕분에 지금까지 만족하며 잘 쓰고 있다.

한 번씩 디지털 디톡스 한다며 블랙베리와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내겐 충분한 핸드폰이다.

그래서 딸기우유 색깔의 폰 케이스를 샀다.

하루 만에 도착해서 어제부터 쓰고 있다.

다시 새 핸드폰이 된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충분하고 넘치는지를 생각한다.

그걸 잘 활용해서 써야지 자꾸 새로운 것에 마음 두면 안 된다.

외적인 것 말고 내적인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두 철학자 덕분에 나의 어리석은 욕망도 어렵지 않게 잠재워 갈 수 있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떤 것들에 대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판단 자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