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53.
우리가 신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성에 순종해서 일을 하고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른 길을 따라 우리의 본성이 요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에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잠복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53.
클레어 키건의 새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120여 쪽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강렬하다.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와 분위기에 압도되어 읽고, 두 번째는 문장에 집중해서 읽고 있다.
아일랜드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했던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이 일어난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198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펄롱은 어머니가 일하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집의 주인인 미시즈 윌슨의 보살핌 덕분에 잘 자랄 수 있었다.
부지런하게 일해서 석탄, 목재상을 운영하고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건실한 가장이 되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웃과도 잘 지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저녁, 펄롱은 수녀원에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장작과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불편한 사실과 맞닥뜨린다.
사람들은 가톨릭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은 하지만 외면하고 더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연히 사실과 마주한 펄롱은 크리스마스이브날,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일과 맞선다.
자신이 구하는 아이가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타인의 친절과 보살핌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다는 마음에 고생길로 향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펄롱은 두렵지만 마음만큼은 가볍고 행복하다.
‘우리가 신들과 공유하고 있는 이성에 순종해서 일을 하고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문장을 필사하면서 어제 읽었던 이 소설이 대번에 떠올랐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펄롱이 실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펄롱 같은 사람들 덕분에 막달레나 세탁소가 세상에 알려지고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바른길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고,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길이다.
나와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일 수도 있다는 마음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클레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