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75.
우주의 본성은 질서정연한 우주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75 중에서
“엄마, 이거. 티비에서 나오던 거잖아.”
아침을 먹던 은서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가리키며 말한다.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차분한 미사곡이 나오고 있었다.
먼저 다 먹고 그릇을 갖다 놓고 오는 사이 비발디의 사계로 바뀌어 있다.
활기찬 봄이었다.
사계 곡을 좋아해 거실 컴퓨터 모니터로 자주 틀어 놨었다.
은서가 그걸 기억하는지 알은체를 한다.
사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밝은 봄도 좋지만 휘몰아치는 여름은 무언가 상상하게 만든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문학 작품에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 같달까.
자기 전 읽은 외국 소설은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익숙하고 편안한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기분을 몇 번 느껴 본 적 있다.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 직장 생활, 결혼 생활이 그랬다.
모두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그중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건 직장 생활이다.
큰 용기를 내어 집과 5시간 넘게 떨어진 타지에 자리 잡았다.
면접, 취업, 자취방 구하기, 이사, 적응 등 모든 걸 혼자 해야만 했다.
철저히 혼자였던 시기였다.
앞에서 둘째와 셋째가 나란히 앉아 놀고 있다.
그림 그리고 있는 막내에게 오빠가 뽀뽀하니 뽀뽀하지 말라고 꽥꽥 소리친다.
내 현실은 지금 발붙이고 있는 이 일상에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책 속에서도 음악에서도 타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낯설고 설레는 감정을 마주할 수 있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필연적인 결과로 생겨난 것이라면,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 낸 거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과 닮기 위해선 더욱 오늘에 발붙이고 살아야 한다.
내가 듣고 읽고 보고 쓰는 모든 게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