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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Feb 27. 2024

[프롤로그] <글 쓰는 엄마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 jae_escobar, 출처 Unsplash


스물다섯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결혼 전과 후는 환경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완전히 달랐다. 인생 제2막을 알리는 큰 사건이었다. ‘이런 게 결혼 생활이구나.’를 미처 다 알기도 전에 첫째를 낳았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라는 직함에 엄마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나는 누구지?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과거 내 모습에 발이 묶여 있었다. 사회 초년생에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경력을 쌓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예쁘게 꾸미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모습에 혼자 눈물 흘린 날도 많았다.


결혼 전엔 당연했던 일상이 결혼 후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외출이라도 한 번 하려고 하면 남편 근무를 맞추고 아이들을 맡겨야만 했다. 그 번거로움이 싫어서 약속을 미룬 적도 많다. 결혼 전과 후는 같을 수가 없는데 알면서도 미혼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나만 빼고 모두 잘 사는 것 같았다.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있을 때, 한 번씩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연애, 취업, 이직,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 상담이었다.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는 대리만족과 동시에 내겐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취업과 이직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같이 놀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 되었다. 눈 뜨면 다시 이 하루가 반복될 생각에 허무했다. 하면 표가 안 나고, 안 하면 금방 표 나는 게 집안일이라 했던가. 새벽까지 청소해 둔 집도 다음 날 아침이면 엉망이 되었다. 아이가 일어나면 세 시간 걸려 청소한 집이 어질러지는 데에는 5분도 안 걸렸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려고 대학 가서 공부했던 걸까, 나도 꿈이란 게 있었는데…. 내가 하는 집안일이 무의미해 보였다.


해외 간호사, 해외 봉사, 세계 여행 등 세계를 누비는 꿈을 가진 적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해외는커녕 집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아이만 키우다 시간 다 가면 어쩌지, 아이들이 다 큰 후에 내게 남은 거라곤 집에서 애 키웠다는 것 하나만 남으면 어쩌지, 두려웠다.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육아서를 시작으로 책 읽는 재미에 다시 한번 눈 뜨게 되었다. 책을 읽으니,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도 행동도 달라져야 했다. 먼저 생각을 바꿨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환경과 감정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읽게 된 육아서가 나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다. 나에 대해 파고들면 들수록 나를 더 귀하게 여기게 됐다. 내가 하는 집안일과 육아가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킬 기회였다. 잘 자란 아이 곁에 잘 자란 어른으로 대등하게 서 있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잘 해냈을 때,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도 기꺼이 해냈을 때야말로 내가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 nickmorrison, 출처 Unsplash



성장하겠다고 마음먹으니 무료할 틈 없이 하루가 꽉 차기 시작했다. 아이들 보는 틈틈이 내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잘 때,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보고 나면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아 후회되고 찝찝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물러나 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냈을 때, 내게 주는 보상으로 그 시간을 선물한다.


책 읽는 재미에 빠지니 자연스레 글쓰기로 마음이 옮겨갔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작가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나도 글을 써 보면 어떨까,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꿈이 꿈틀거렸다. 읽는 삶에서 쓰는 삶이 보태어진 순간, 내 인생에 있어 제3의 문이 열렸다. 육아와 살림만 하던 전업주부가 독서와 글쓰기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셋째가 태어난 해에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면서 반쪽짜리 자유 시간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24시간을 보냈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자유롭고 여유롭게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선택한 일이었지만 답답한 적도 많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때마다 거창하진 않지만,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헤어 나올 수 있게 해 주었다.


미혼인 친구들은 주위에 결혼한 사람 중 내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결혼 생각이 없다가도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내 생활에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나는 왜 만족도가 높을까?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어서이다. 그러니 내 삶에 만족도가 높고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가는 하루는 어떨까? 엄마와 작가. 두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할 때가 많다. 여전히 둘 사이의 균형을 아슬아슬 맞춰 나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한다. 엄마와 쓰는 사람 모두 나이기 때문이다.


연년생 형제에서 삼 남매로 바뀌어도 내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옆에서 떠들고 노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이를 키우며 언제, 어떻게 글을 쓰느냐고 궁금해하는 분이 많았다. 앞으로 연재하는 <글 쓰는 엄마의 하루>를 통해 그 궁금증이 조금이라도 해소되면 좋겠다. 나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망설이는 엄마들에게 시작할 힘이 되길, 글쓰기를 통해 일상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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