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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r 05. 2024

집에 있어도 바쁜 이유



© documerica, 출처 Unsplash



개학 날이다. 두 아들은 이제 초등 2, 3학년이 된다. 어떤 친구와 같은 반이 될까, 번호는 몇 번일까 궁금해하며 신발을 신는다. 잘 갔다 오겠다고 밝고 큰 목소리로 말하며 집을 나선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아이들에게서 새 학기 설렘이 느껴져 덩달아 두근거렸다.     


문 닫고 들어와서는 곧장 아침 설거지부터 했다.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전날 남편 직장동료와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였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청소하고 음식 준비하고 치우는 게 피곤했던 모양이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 일과를 끝마치지 못했다. 필사 글부터 마저 쓰려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네 살이 된 막내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내년쯤을 생각하고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더 데리고 있고 싶다. 글 쓰는 엄마 옆에서 은서는 그림 그리고 색칠하며 논다. 이것 보라며 보여주고 설명하고 사진 찍어 달라고 한다. 생각도 글도 뚝뚝 끊기지만, 괜찮다. 이렇게 지낸 시간이 벌써 6년이다.      




© thoughtcatalog, 출처 Unsplash



집안일과 아이를 보는 사이에 생기는 내 시간은 소중하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엄마에겐 자유 시간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 낮에 온전히 보낼 수 있는 내 시간은 아이들이 낮잠 잘 때뿐이다.      


선우, 윤우가 클수록 동시에 자는 순간이 드물어졌다. 세 살 네 살 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목욕하면서도 한참 논 날이었다. 씻겨서 한 명씩 머리를 말리고 내보냈다. 욕실을 정리하고 나오니 둘 다 잠들어 있었다.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뭐 하지? 뭐부터 할까? 책 볼까? 글 쓸까? 영화 한 편 볼까?’ 행복한 고민을 했었다.      

잠깐이라도 내 시간이 생기면 짧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가벼운 책을 읽거나 쪽잠을 자거나 블로그에 글을 썼다. 옷장 정리나 빨래 개기 같은 집안일은 아이들 노는 옆에서 했다. 

글쓰기가 내 인생에서 더욱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된 뒤로는 틈새 시간도 더 소중해졌다. 언제든 시간이 생기면 글을 쓸 수 있도록 노트북은 늘 열려 있다.     





© andrewtneel, 출처 Unsplash



엄마나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 그냥 있다고 답하지만, 그냥 있지 않다. 아이와 놀거나 밥을 준비하거나 청소하는 등 육아, 집안일만 해도 하루가 금방이다. 그 사이사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을 본다. 조용히 무언갈 하고 있다.     


글 쓰는 엄마 곁에 있던 두 아들은 어느새 자라서 학교에 간다. 그 자리를 이젠 딸이 채우고 있다. 색칠 놀이가 끝난 딸과 간식을 먹었다. 과자를 먹으며 일기를 쓰는데 책 읽어 달라고 한다. <옥토넛>을 보던 중 엄마는 어떤 애 하고 싶어? 얜 누구야? 우리 같이 여기 살까? 같은 얘기를 나눴다. 책으로 봐도 좋아하는데 영상으로 보면 더 좋아하겠다. 오빠들과 같이 TV를 보면 제 나이에 맞지 않아 엄마를 찾아올 때가 많다. 

두 편만 보기로 약속하고 <옥토넛>을 틀어주었다. 엄마는 글 쓰고 오겠다고, 재밌게 보라고 하니 신나서 대답한다. 다시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쓴다.      


집에 있어도 바쁜 이유는 아이와 있는 틈틈이 나를 잊고 살지 않기 위해서다. 집안일과 육아만 하는 엄마로만 남지 않고 나로 존재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읽고 보고 쓰고 싶은 글이 잔뜩이다. 육아와 글 사이를 넘나들며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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