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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r 12. 2024

집순이에게 집이란




© anthonytran, 출처 Unsplash



“종일 집에만 있으려면 안 심심해?”

아이와만 있는 시간이 심심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심심할 틈이 없다.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와중 생기는 내 시간은 소중하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기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 편안함을 느끼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분명한 내향형 인간이다. 그래서 아이, 어른 상관없이 갑자기 누군가 집에 찾아오는 일이 불편하다.


집에 누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전에 합의된 약속이 아니거나 양해를 구한 만남이 아니라면 당황스럽다. 내 공간과 시간을 존중받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하다. 이런 것 하나에도 마음 쓰는 내가 그릇이 작게 느껴졌다. 나만 괜찮으면 모두가 좋을 텐데 하는 자괴감도 들었었다.



© brookecagle, 출처 Unsplash



MBTI 성격 검사 유형으로 봤을 때, 남편은 E(외향형), 나는 I(내향형)이다. 신혼 초, 집들이를 일곱 번 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인간관계 넓은 남편은 집들이 언제 할 거냐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을 한 번 초대한 게 다인데 남편은 친구, 선후배, 현 직장동료뿐 아니라 지난 직장동료들까지 모두 한 번씩 초대했다.


집들이가 휩쓸고 간 신혼 초 이후에도 우리 집엔 남편 지인이 자주 찾아왔었다. 고민 상담부터 함께 취미를 공유하기 위한 이유였다. 나는 과일을 깎거나 커피를 타서 전해주고, 아이와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오면 주로 남편 방에서 머물렀는데도 거실에 있는 게 편하지 않았다.맨얼굴에 옷도 편하게 입고 있었고, 집도 어질러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나에게 크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 나는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불편하구나. 편안함이 유지되지 않을 때, 집이 갑갑하게 느껴지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 everythingcaptured, 출처 Unsplash



두 아들이 어릴 때였다. 낮잠 자는 조용한 오후, 그제야 한숨 돌렸다. 설거지하고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옆에 쌓아둔 빨래 대신 읽고 있던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였다. 받기가 망설여졌다. ‘설마 이번에도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을 누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 하고 있냐, 바쁘냐는 말에 그냥 있다고 했다. 오후에 볼 수 있냐고 물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뜸을 들이다가 알겠다고 답했다. 친구는 아직 아이가 없어서 남편이 일하러 간 낮 동안 심심하다고 했다. 먼 타지에 살지만, 친정에 오거나 볼 일이 있어 근처에 올 때면 갑자기 연락하곤 했었다. 그때부터 책은 눈에 안 들어온다. 빨래부터 개고 집을 치웠다.


잠시 뒤, 친구가 왔다. 당시 두 살, 세 살이던 아이들은 잠으로 보충한 에너지를 쏟아냈다. 블록을 쌓다가 둘이 다투기도 하고 냉장고를 수시로 열면서 먹을 걸 달라고 했다. 아이 둘과 쩔쩔매는 나를 보며 친구는 힘들겠다, 연년생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 키울 것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친구가 돌아간 후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친구 지인의 남편, 시댁 이야기를 들으며 두 아들과 씨름하던 그 상황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내 시간과 감정도 소중하다는 걸 느낀 날이었다. 다음부턴 갑작스러운 약속이나 방문은 거절했다. 미안함은 그 순간뿐이었다.



© christinhumephoto, 출처 Unsplash



글을 쓰면서부터 집이라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다르게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집이 곧 직장이자 작업 공간이다. 돈은 벌고 있지 않지만, 미래에 경제 활동할 내게 투자하는 시간이다. 수입이 없더라도 공부하고 끊임없이 나를 키워나가는 공간이 집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을 세우기에 갑작스러운 방문은 더욱 내 시간을 침해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남편도 이런 아내의 성향과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 갑자기 집에 누군가를 오게 하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밖에서 만나거나 미리 약속을 잡거나 양해를 구한다.


그 어느 곳보다 사적인 공간인 집을 개방할 이유는 없다.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가장 가까운 보좌관들에게도 절대 자기 집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내가 이상한가? 속이 좁은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글 쓰는 엄마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내 공간과 시간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에게 집이란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이 아니다.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며 그 안에서 읽고 쓰며 산다. 집은 내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은밀하고 내밀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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