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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r 19. 2024

언제 다시 일해야 할까


© jknorman714, 출처 Unsplash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일하라고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첫째를 낳고 집에 있을 땐, 언제 다시 일할 건지 주위에서 많이 물어봤다.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둘째를 낳고 나니 어린이집 가면 그때 다시 일해도 되겠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언제가 적당할지 잘 모르겠다.      


재테크를 잘해서, 부동산을 공부해서, 여러 부업을 통해서 수익을 내는 전업주부를 보면 부러웠다.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나도 재테크 야무지게 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함께 벌었다면 대출 갚고, 저축하고, 생활비 쓰는 것도 더 여유로웠을 텐데… 답답하고 미안했다. 남편에게 나도 일하는 게 나을지 물었다.


남편은 내가 일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일하는 것도 좋지만, 돈 때문이라면 반대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들 키우는 것만 해도 크게 돈 벌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육아가 힘들어도 아이가 커 가는 이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육아관이 비슷해 경제적 여유보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택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귀여운 말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웃을 때면, 일하고 있는 남편 생각이 많이 난다. 이 모습을 나만 보기 아깝다. 집에 왔을 때 얘기해 주려고 급히 메모해 둔다.


5인 가족, 빠듯한 외벌이, 가장의 무게. 경험해 보지 않은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남편이 가족을 위해 혼자 일하고 있지만, 선우와 윤우가 초등학생이 되면 나도 사회로 나가야지 생각했다. 그전까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찾고 싶었다. 셋째가 생기면서 그 시간이 더 늘어났다.




© cathrynlavery, 출처 Unsplash


       

결혼 전엔 관심사가 직장, 연애, 결혼처럼 좁고 한정적이었다. 결혼 후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좀 더 본질에 다가가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뭘 하고 싶은지 계속 묻고, 고민하고, 찾아 나간 덕분이다.      


책에서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이라고 하면 무작정 따라 해 봤다. 감사 일기 쓰기, 성공 일기 쓰기, 하루 24시간 기록하기, 새벽에 일어나기와 같은 개인적인 활동부터 함께 하는 활동에도 관심이 갔다. 엄마 성장 모임에도 나가보고, 줌으로 하는 독서 모임에도 참여했다. 전업주부만을 위한 1:1 무료 코칭도 받아봤다.     

 

코칭받을 때 했던 과제 중에 10년 후 내 모습 생생하게 그리기가 있었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나는 마흔 살의 내 모습을 그려봤다. 긴 글 끝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자존감을 심어주는 작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적었다. 작가로 살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다. 적어본 후에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분명해졌다.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해보면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가 돌 전일 때, 평생 교육원에서 처음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캘리그래피는 글 쓰는 도구만 다를 뿐 글을 쓴다는 건 똑같았다. 한 학기 수업을 듣는 동안 즐거웠다. 다음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었다. 이 감정은 일기를 쓰면서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문예전에 글을 내면서도 느꼈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해!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 나가면서 확실히 알았다.  




© bonniekdesign, 출처 Unsplash


              

일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압박감을 내려놓고 전업주부로 지내는 이 시간을 유용하게 쓰려고 했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간호사 면허가 있지만 무조건 간호사로서의 나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이 나의 두 번째 꿈이다. 나에 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을 이것저것 해봤기에 찾은 답이다.


지금까지 개인 저서 세 권, 공저 한 권, 전자책 한 권을 냈다. 원고 집필 외에도 일기, 필사, 일상 기록을 해오고 있다. 이젠 언제 다시 일할 거냐는 질문보다 언제 다음 책이 나오냐, 내용이 뭐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니 받는 질문도 달라졌다.      


“엄마, 근데 엄마 작가야? 우리 선생님이 엄마가 작가래.”

《연년생 아들 육아》가 나왔을 때, 일곱 살이던 둘째가 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윤우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엄마 작가지~ 글 쓰는 사람이지!”

그 후로 2년이 지났다. 방에서 남편이 나를 찾더니 곧이어 선우에게 엄마 뭐 하냐고 묻는다. 선우는 글 쓰고 있던 나를 보더니 아빠에게 외친다.

“엄마 일해~”

내색은 안 했지만,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두 아이가 어렸을 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길이 답답했다. 뭘 하고 싶은지 확신이 없었다. 계속 묻고 답했다. 넌 누구니? 뭘 좋아하니? 어떻게 살고 싶니?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고, 이렇게 살고 싶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의 끝에서, 지금 삶을 만났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내 일이다. 아직은 가계에 보탬이 되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외벌이 가장의 무게를 덜어줄 날도 올 거라 믿는다. 그렇게 되게 할 거란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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