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6.
인간은 인간에게 고유한 일을 할 때 기쁨을 얻는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6 중에서
세 아이가 모두 9시 전후로 잠들었다.
느긋하게 책 읽다 잘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었다.
하지만 문자 소리에 핸드폰을 켰다가 그대로 두 시간이 날아갔다.
활자보다는 더 자극적인 영상이 보고 싶었다.
잔잔하고 순한 영화를 찾다가 덮었다.
차라리 영화를 한 편 봤던가, 자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밤에 뇌를 더 각성시키고 자극에 노출시켰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조금이라도 읽다 잘 생각으로 엎어놓은 책을 다시 펼쳤다.
이기주 작가의 《보편의 단어》였다.
단어 하나에 글 한 편으로 진행되는 에세이다.
공감하고 밑줄 긋고 메모하다 보니 어느새 자극을 쫓던 뇌가 차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작가의 문장도 여러 개였다.
내가 찾던 진짜 자극을 눈앞에 두고 가짜 자극으로 넘치는 화면 속을 헤매다 빠져나온 셈이다.
안정감은 편안한 수면으로 자연스레 이끌었다.
침대 스탠드를 끄며 생각했다.
자기 전엔 핸드폰과 패드는 밖에 두어야겠다, 알람은 알람 시계를 이용해야겠다고 말이다.
디지털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반강제적이고 자발적인 아날로그적 삶도 필요하다.
오늘 문장에서 인간에게 고유한 일 중 '자기에게 들어오는 인상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 것인지를 진단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인상'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마음속에 새겨지는 느낌'을 의미하는 단어일 테다.
전날 밤 내가 생각하고 느낀 감정은 이 고유함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봤을 때는 후회와 허무함만 남았는데 책을 봤을 때는 기쁨과 충족감을 느꼈다.
내게 들어오는 느낌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단했을 때 무엇을 받아들이고 거부해야 하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내가 책에서 기쁨을 얻는 이유는 인간에게 고유한 일이기도 해서다.
모든 사람이 책을 좋아하고, 좋아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온갖 자극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의 진짜 기쁨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 기쁨이 책이 아니어도 각자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