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8.
정신에게는 고통을 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맑은 하늘과 고요한 바다를 간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온갖 판단과 충동과 좋아함과 싫어함은 정신 내에서 생겨나고, 그 어떤 해로운 것도 외부로부터는 정신 속으로 침입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8 중에서
조금 전, 막내에게 히스테리적인 짜증을 냈다.
윤우 방학 과제를 잠깐 봐주고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거는 스스로 해보라 하고 돌려보내려던 참이었다.
은서는 윤우와 얘기 중에도 계속 빈츠 과자 하나 더 먹고 싶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때 은서가 아슬아슬하게 올려둔 우유팩이 떨어지면서 의자와 내 바지에 쏟아졌다.
발작 버튼이 눌러지듯 짜증이 솟구쳤다.
아이는 일그러진 엄마 얼굴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은서에게도 우유가 묻어 옷을 벗겼다.
옷 갈아입으라고 하니 방으로 뛰어간다.
주변 정리 후 다시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왜 짜증이 툭 튀어 오른 건지 모르겠다.
그때 윤우가 던진 종이접기 팽이가 책상 위에 떨어졌다.
깜짝 놀라면서 또 한 번 발작 버튼이 눌러졌다.
아이의 가벼운 장난도 받아주지 못할 만큼 날이 서 있다.
내가 왜 이러나. 뭐가 문제인가.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툭툭 끊긴다.
아이들은 왔다 갔다 하며 수시로 내게 말하고, 묻고, 봐달라 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조급함, 답답함, 압박감이 피어올라 마음에 변화가 온 건 나다.
외부로부터 해로운 것이 정신 속으로 침입할 수 없도록 할 힘이, 고통을 해로 여기지 않을 힘이 정신에게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떠한가.
지금 내 정신은 성벽을 지키던 군사가 적의 기습에 당한 것 같은 모습이다.
성벽을 지키는 군사가 한 명이 아니듯 내 정신을 지키는 감정도 하나는 아닐 것이다.
비록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잠시 휘청했지만 무너진 건 아니다.
끝까지 방어해야 한다.
다시 군영을 재정비하고 성벽을 단단히 하고 무기를 손보고 정신을 바짝 챙긴다.
그 과정 중 하나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했다.
곧바로 엄마를 안아주며 자기도 미안하다 한다.
글을 쓰며 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노래를 들으며 숨고르기 한다.
'고통을 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맑은 하늘과 고요한 바다를 간직할 수 있는 힘'이 정신에게 있다.
오전 일은 이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일어난 건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