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0.
자연에게는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공간과 질료와 솜씨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0 중에서
올해 들어 독서에 푹 빠진 남편 친구가 있다.
매일 통화하는 사이인데 이제 대화 주제가 연애 상담에서 책으로 바뀌었다.
대학생 때부터 책을 빨리 읽던 그 오빠는 문학부터 자기 계발서,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갔다.
책을 읽는 동시에 탭으로 내용 정리를 하고, 독서모임도 활발히 참석 중이다.
독서 모임을 하나 더 늘릴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전 모습을 떠올리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남편도 이런 책 없냐고 자주 물어봐서 찾아 주고 있다.
친구 영향이 크다.
외출 후 방전된 상태로 남편 방에 들어갔는데 의학 관련 책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내 책 세 권도 가지런히 꽂혀 있다.
"뭐야~ 죽음 시리즈로 모아 놨네요~"
웃으며 말하는 내게 맞다며 따라 웃었다.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일 터였다.
책 읽기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필사를 하며 최근 정리했던 마음에 대해 말했다.
"선배, 나는 요즘 말을 잘 안 하고 싶어. 나도 책 읽기에 빠져 살 때는 책 읽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내가 읽은 이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책 얘기 나누는 것도 재밌고. 그런데 지금은 말을 하면 내 안에 소중하게 품고 있던 감정이나 뭔가가 쉽게 날아가 버리는 거 같애. 그래서 지금은 독서모임처럼 말을 하는 자리보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고 싶더라고요. 나중에는 또 독서모임에 나가고 싶을지도 모르지만요."
내 생각에 끄덕이며 공감해 주던 남편이 말한다.
"현진아, 넌 나랑 결혼 안 했으면... 정말 수녀가 됐을 거 같애..."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는 말이다.
"아니거든요~ 나는 속세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 수도자는 못 되거든요~ 물욕도 얼마나 많다고. 오죽하면 동생이 누나 보고 욕망 항아리라고 하겠냐고요. 그래서 항아리까진 아니고 단지라고 해줄래? 했었는데..."
푸하하 웃던 남편과 이번엔 수도자의 삶으로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수도자의 작은방에는 옷 한 벌, 구두 한 벌, 책상 하나, 필기구 하나, 침대 하나가 전부다.
이처럼 최소한의 것으로 단출하게 생활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어릴 때 읽었던 외국 아동 문학에서 주인공이 기숙학교에서 지내는 생활을 동경하던 것과 비슷하다.
옛 서양을 배경으로 하기에 종교적인 성격의 학교가 많았고, 검소함, 엄격함 안에서 일어나는 생활 묘사가 왜인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현실은 맥시멀 리스트로 살고 있다.
내가 책을 못 놓는 것처럼 남편도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니 조율하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내가 오래 머무는 공간만큼은 간소하게 만들어야지 생각한다.
공간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도 소박한 사람이고 싶다.
비록 욕망 단지라 불리는 사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