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6.
나의 운명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게 하는 것은 신의 의도가 아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6 중에서
이렇게 좋은 날, 집에만 있기 아깝다며 오후 즈음 외출했다.
남편은 이번 주말, 아이들이랑 놀러 가기 딱 좋은데 강의 준비에만 메여 있으니 미안해하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간 곳이 서점과 마트였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서점을 좋아한다.
윤우는 축구 책을 또 사고 싶어서 여러 번 서점 가자고 말했던 참이었다.
서점에 오자 세 아이가 삼단 분리되었다.
은서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한글, 수학 놀이 책이 모여 있는 곳이다.
벌써 입학 준비를 할 건지 6·7세용 단계를 자꾸 고른다.
제 나이에 맞는 걸 골라주고 있는데 예상대로 선우가 가장 먼저 왔다.
마인크래프트, 어몽어스 책인데 찾아보니 어몽어스는 글 책이다.
글로 된 책인 줄 알게 되자 선우는 마음이 식었고, 나는 권장했다.
그 뒤로 가져오는 책마다 내 눈엔 다 이상하다.
징그러운 미확인 생물체 책이라던가, 유익함이란 없을 것 같은 코믹북이다.
초등학생이 읽기 좋은 소설책으로 흥미를 끌어보고 권해 봤지만 시큰둥하다.
윤우도 같이 재밌는 책 찾아 달라고 한다.
찾는 축구 책이 없어 더 둘러보다가 허기우기 퀴즈 책을 가져왔다.
징그럽게 생긴 허기우기가 있는 표지를 보며 갈등했다.
남편은 축구 책 산다더니 왜 이걸 들고 오냐고, 다시 가보자고 한다.
그리곤 만화로 된 어린이 축구 책을 골라왔다.
나와 처음 봤던, 윤우에게 딱이다 싶은 책이었는데 웬일인지 안 사고 싶어 했다.
윤우 표정이 안 좋다.
은서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캐릭터 영단어 책을 발견했다.
은서가 우연히 빌리고는 좋아했는데, 나는 같은 시리즈들 중에서 영단어보다는 사자성어나 맞춤법이 더 유용할 것 같았다.
세 권을 보여줬더니 파란색 영단어 책을 고른다.
삐져있던 선우는 아빠의 허락으로 처음 골랐던 마인크래프트 책을 샀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사게 된 선우와 은서는 신이 났고, 윤우는 뾰로통했다.
이렇게 책 한 권 사는데도 부모의 생각이 크게 관여한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아이들에겐 답답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두 아이 모두 처음 시작해 본 방과 후 교실을 즐겁게 다니고 있다.
책상과 침대에 앉아 로봇 과학을 조립하는 선우, 온통 축구 얘기뿐인 윤우 그리고 조그맣고 눈물이 많은 네 살 은서.
비가 오고 그치는 사이 벚꽃이 활짝 피었다.
삼 남매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봄이 와도 같이 놀러 갈 아이들이 곁에 없고, 서점에 가도 어린이 코너에서 책을 두고 고민하는 날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땐 혼자라 홀가분한 마음보다 허전함이 훨씬 클 것 같다.
아이들은 책을 읽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게임을 하다가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 게 많다.
거실에서 새로 산 책을 보는 선우, 윤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언젠간 부모 품을 떠나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아이들이다.
그러니 최대한 눈과 귀를 열고 아이들 생각과 마음과 이야기를 듣자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