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9.
인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가르치든지, 아니면 용납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59 중에서
혼자 다이소에 갔다.
비도 오고, 얼른 갔다 오려고 게임하는 틈에 나왔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정신없다.
어제는 손잡고 갈 아이도, 차도에서 신경 쓸 아이도, 옆에서 말하는 아이도 없었다.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에 쫓아가고 대답하고 봐주면서 나는 언제 편하게 장 보나, 물건 고르나 한숨을 내쉬었었다.
막상 혼자가 되면 편함보다는 허전함이 크다.
서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을까 했는데 혼자 가면 책도 눈에 안 들어온다.
아이들과 나눴던 얘기, 실랑이하던 장면,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모습만 곳곳에서 떠오를 뿐이다.
집에 있을 아이들이 보고 싶어 금방 돌아서 나온다.
다이소에선 아들 둘 엄마가 둘째를 쫓아다니며 이름을 계속 불렀다.
계산하는 사이 조르르 나가버려서 엄마가 놀래서 뛰어나가기도 했다.
초등학생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좁은 과자 코너에서 같이 과자를 고르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이것저것 많이 골랐다.
엄마는 뭘 이렇게 많이 사냐고 꾸중했다.
세 아이 생각이 났다.
고무장갑과 수세미, 과자 조금 산 뒤 얼른 나왔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벌써 이렇게 허전하면 어떡하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게임이 끝난 아이들이 현관으로 쫓아 나온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은서는 엄마가 없어서 슬펐다고, 많이 기다렸다는 말도 한다.
사 온 과자 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먹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죠리퐁에 우유를 부어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설거지를 끝내고 건조기를 돌리려고 보니 선우가 이미 돌려놓았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부모인 우리를 일깨우고 너그럽게 품어주는 건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애틋해지는 관계로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