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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01. 2024

오직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4.

어린아이들의 다툼과 놀이 같은 인생, “시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작은 혼들”이라는 말,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간 오디세우스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한층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4.



어제 오후, 은서 자전거 중고거래를 하러 나갔다.

남편이 같이 가자길래 바로 가져오는 건 줄 알았다.

기다리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붕 떠 버렸지만 그 덕분에 가지고 간 《긴긴밤》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은서는 차에서 잠이 들고, 남편과 윤우는 밖에서 한참을 놀았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리는데 선우가 숨어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다가 우리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내려왔다고 한다.

차 멀미도 심하고 피곤해하는 선우는 홀로 집에 남았었다.

집에 들어오니 나가기 전보다 더 깨끗하다.

제 할 일도 다 하고, 게임도 시간 지켜 하고, 알아서 집 청소까지 해 놓았다.  

《긴긴밤》을 다 읽으면 책 한 권 더 사주겠노라 남편이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 이행하러 밤에 서점도 갔다 왔다.

때때로 이런 일상의 평화로움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긴긴밤》 속 코뿔소 노튼은 가장 행복한 순간 가족을 잃는다.

인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노튼 곁에 긴긴밤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들이 나타난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거실에 앉아 《긴긴밤》을 다시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남은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고 생각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랬구나, 내 인생은 아이들로 충만했구나, 반짝반짝 빛이 났었구나 싶어서.

왜 그 순간과 조금만 지나도 후회할 일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는지 모르겠다.

오직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오늘 체육대회가 있다 하더니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선우, 윤우 모두 재밌게 하고 오면 좋겠다.

은서랑 24시간 함께 하는 시간도 아쉽게 보내지 말자.

마음껏 사랑하고 웃으며 보내자고 5월의 첫날,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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