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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01. 2024

서로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존재들의 이야기

<긴긴밤>을 읽고




"서로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존재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남편이 선우에게 추천한 책이었다. 

학교에서 이 책을 읽고 온 선우가 슬펐다고 줄거리를 얘기해 주었다. 

아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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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이 속에서 내 아이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멀리서 형체만 봐도,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다. 

함께 해온 시간, 애정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마음을 아이에게 말하듯 설명한 문장이 따뜻했다. 

나를 설명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건 이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나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시선이었다.

그 시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거였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지쳤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 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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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와 펭귄은 너무나 다른 존재지만 서로에게 전부였다. 

살아가는 이유였다. 

긴긴밤을 함께 살아남은 상처투성이들.

우리는 상처받고 지치고 엉망진창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존재로부터 사랑받고 위로받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혼자서는 약해질 수 있어도 둘이라면 강해질 수 있다. 

그렇게 관계를 맺으며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노든은 온 힘을 다해 번쩍 일어나서 내 부리에 코를 맞댔다. 작별 인사였다.

나는 노든을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노든은 내가 초원을 가로질러 돌 뒤에 숨었다가 다시 자갈밭을 가로질러 나무로 된 울타리를 넘어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서서 내 뒷모습을 바라봐 주었다. (p117,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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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였던 존재와의 이별 장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떠날 수밖에 없는 마음과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부모 자식과 닮았다. 

언젠가 아이들은 내 품을 떠난다. 

언제가 되든 그 마지막은 코뿔소 노든과 펭귄처럼 정중하고 애틋하고 따뜻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중한 존재에게 미안함 대신 최선의 마음을 남기자"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무언가를 보거나 읽은 후에 뭐라도 쓰고 싶으면 그 작품은 좋았다고 평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긴긴밤》은 아동문학이지만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었다. 

노든의 아픔과 분노, 외로움을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의 감정을 생생하고 묵직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괴로워질 만큼 미안했다. 

상처투성이 노든을 살아가게 만들어준 친구들,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우리 아이들 같았다. 

부모 품에 있을 때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기르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내가 느낀 감정이 글로 다 표현이 안 될 만큼 먹먹하다.

나도 언젠가 노든처럼 나의 마지막을 감지한 순간이 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는 행복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 함께한 시간 자체가 엄마에겐 큰 선물이고 축복이었단다. 고마웠어 얘들아. 엄마의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줘서…."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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