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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17. 2024

모든 게 다 괜찮아지고, 좋아지고, 감사해진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9.

만물은 지성을 갖춘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거나, 오직 원자들만 존재하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9 중에서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왔다.

집 앞 정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끄적였다.

은서는 자전거를 타고 옆에 앉아 스티커 놀이를 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고 흔들리는 나무는 신비하다.


오후에는 학교로 갔다.

윤우가 달리고 있는 운동장에서 모래바람이 분다.

1, 2학년이 섞여 공을 차고, 뺏고, 뺏기고, 넣고, 먹히는 경기가 재밌다.

귀여워서 쿡쿡쿡 웃음이 나는데 경기를 뛰는 아이들은 진지하다.

윤우가 두 골을 넣고, 두 골 모두 야무지게 세레머니까지 한다.

은서는 오빠 축구에는 관심 없다.

놀이터에서 놀이 기구도 탔다가 씽씽이도 탔다가 개미 관찰에 여념이 없다.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기에 집에 가서 놀이도구를 가져왔다.

둥근 모래 놀이터 위로 나무 그늘이 졌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은서가 노는 모습을 보다가 무릎 위 책도 읽었다.

벤치에 나무 그림자가 일렁인다.


선우는 오늘 로봇 과학을 하는 날이다.

언제쯤 나오나 틈틈이 교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선우였다.

길이 엇갈렸던지 우리가 나오고 선우는 집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전화 목소리가 낯설었다.

집이 코앞인데 전화로 오늘 하루 어땠는지 짧은 근황을 나누었다.

잠시 후 놀이터로 나온 선우와 다시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남편은 오늘까지 해줘야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울상인데 아이들은 평소보다 업 되어 있다.

장난을 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나는 이상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다.

빨리빨리 해야지가 아니라 오늘 안에만 하면 되지 한다.

이 여유는 어디에서 온 걸까.

매일 집 밖에 나와서 보는 자연과 조금씩 읽고 있는 스님의 글 덕분인 듯하다.

그리고 《명상록》도.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자연, 인생, 죽음, 존재, 현재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금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고, 좋아지고,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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