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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16. 2024

번뇌가 피어오를 때 보는 곳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8.

어떤 사람이 잘못을 했다면, 그 해악은 그 사람 자신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잘못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38.



바람이 분다.

은서는 자전거를 탄다.

따릉따릉 벨을 울리며 햇빛과 그늘 속을 오간다.

구름이 밀려가는 속도가 빠르다.

은서가 다 가고 있다고, 지금 밤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도 가자고 한다.

구름은 원래 움직이는 거라고 했더니 “그래?” 하며 계속 자전거를 탄다.


뱅글뱅글 돌며 자전거를 타는 은서를 보다가, 흔들거리는 나무를 보다가, 법정 스님의 책을 읽었다.

스님의 글을 읽으니 내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욕심을 내고 사는지, 못난 마음을 품고 사는지 마주하게 된다.

조금 있으니 선우가 손을 흔들며 우리가 앉아있던 정자로 온다.

하교하면 곧바로 오는 선우를 기다린다.

6살 차이 나는 남매가 같이 자전거도 타고, 새로 온 퍼즐도 맞추고,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면 힘든 건 나다.

남 탓을 하는 것도 나쁜 마음이다.

털어내는 게 힘들어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번뇌’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는 불교 심리용어]라고 나온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욕심, 성냄, 어리석음에 있다고 보아 이를 3가지 독(三毒)이라 한다.

나야말로 ‘어리석은 중생’이다.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으로 3가지 독을 품고 살고 있지 않는가.


은서가 먼저 들어가자고 할 때까지 밖에 있었다.

씻고, 저녁도 배불리 먹었다.

선우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와 반강제적으로 빨래 옆에 앉았다.

에어팟을 끼고 최근에 꽂힌 팝송을 한곡 반복으로 들으며 개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방심하면 피어오르는 번뇌로 자꾸 내가 가진 행복을 가린다.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손에 쥐고 있는 것조차 놓치게 된다.

언제쯤 혜안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욕심만 내려놔도 나를 흐릿하게 하는 번뇌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더 욕심부리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크고 있는 것만도 너의 큰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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