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10.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모두 강도들이 아니겠는가.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10 중에서
눈을 뜨니 밖이 깜깜하다.
투둑투둑 빗소리가 들린다.
어제 바닥에서 같이 잠든 선우와 은서, 새벽에 침대로 찾아온 윤우까지 모두 잔다.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나 나왔다.
독서대에 올려져 있던 《흐르는 강물처럼》을 내려놓고 《명상록》을 올렸다.
오늘 문장을 읽으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속 인물들이 생각났다.
주인공에겐 선한 이웃인 사람들이 인디언계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겐 무시, 멸시, 혐오의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한 소녀에게 소중했던 이를 잔인하게 뺏어간다.
목숨을 앗아간 건 한 사람이지만 숨어 살게 한 데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큰 벌레는 잡지 못하지만 모기 같은 작은 벌레는 잡는다.
아무리 작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것을 잡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벌레를 잡을 때마다 <삼체>에서 외계 존재가 "너흰 벌레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장면이 떠오른다.
쉽게 생명을 앗아가고,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고, 큰 의미 없이 행하는 일.
사람에겐 저마다의 서사가 있지만 신이라 불리는 외계 존재에게 인간은 한낱 벌레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내가 잡는 벌레도 그렇다.
하나 더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 거란 장수 소배압이 고려 사신에게 전쟁을 일으키고 약탈하는 것은 호랑이가 사냥을 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했었다.
내가 살기 위해 약한 존재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제 자기 전에 은서를 여러 방 물은 모기를 잡았다.
괘씸하게 생각하며, 눈에 띈 걸 반가워하며 잡았더랬다.
대상만 다를 뿐 이 마음이 소배압과 뭐가 다를까.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아이들도 모두 일어났다.
조용했던 집이 아이들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뿌예진 창밖을 보니 올해 장마도 시작이다.
자연에게 어떤 뜻이 있을까마는 이 비가 도움이 되기도 하고,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이치지만 당연하지 않다.
내가 살아 숨 쉬는 것과 벌레를 죽이는 것 사이에도 당연함은 없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게 될 때, 새로운 곳으로 한 발짝 들어간 느낌이다.
비가 쏟아지는 오늘 아침이 꼭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