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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25. 2024

듣는 것과 나 사이




© larisabirta, 출처 Unsplash



투둑투둑. 아침에 일어났더니 비가 온다. 가족들은 아직 깨어나기 전이다. 책상에 앉았다. 잔잔한 음악을 틀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빗소리가 음악이었다. 어랏, 정말 그렇네. 빗소리만큼 자연스러운 음악이 또 있을까. 새소리도, 바람에 나뭇잎이 사르륵 거리는 소리도 모두 음악이다. 새로운 발견에 반가운 아침이었다.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으니 아이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아쉽지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끝이다.


아침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남편과 아들들이 직장과 학교로 가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신문을 읽는다. 은서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색칠하기도 하고, 퍼즐을 맞추기도 한다. 내 시간은 뭉텅이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틈틈이 앉아서 쓰고 읽는다. 

KBS Classic FM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멍하게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타닥타닥 글 쓰다가도 진행자의 말에, 청취자의 사연에 귀 기울인다. 이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앞서 들었던 말을 생각해 본다. 


클래식을 듣고 있으면 내 마음과 생각까지 함께 차분해진다. 퇴고할 때는 좋아하는 클래식 한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 소음 차단과 감정 컨트롤을 위해서다. 글을 쓸 때도, 수정할 때도 내 곁에는 늘 아이들이 있다. 초고를 쓸 때보다 퇴고를 할 때, 한껏 예민해진다. 특히, 곧 출간을 앞둔 교정지를 볼 땐 어쩔 수 없다. 청소는 뒷전이고, 아이들 밥도 겨우 챙겨준다. 그리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이어폰을 낀다. 

베토벤의 묵직한 곡을 좋아해 어떤 때는 피아노 소나타 14번을, 어떤 때는 교향곡 7번 2악장을 듣는다. 지금의 괴로움을 다 이해한다는 듯 토닥이고, 이 또한 지나가리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그땐 잘 몰랐지만, 사춘기 소녀였던 중학생 때 클래식 CD 묶음을 사서 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받는 느낌을 음악에서 느꼈던 것이다. 그때도 베토벤을 제일 좋아했었다.



© lorenzospoleti, 출처 Unsplash


라디오 채널 말고도 유튜브에서도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어느 날은 한국인이 사랑한 클래식 랭킹 1~10위 영상을 틀었었다. 곡에 대한 짧은 설명도 같이 나와서 유튜브로 듣는 걸 좋아한다. 음악만 들어도 좋지만 곡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들으면 더 재밌다. 

10위 안에 쇼팽이 두 번이나 나왔다. 쇼팽(1810~1849)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폴란드 작곡가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5위에 올라와 있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우승한 곡으로 우리나라에선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쇼팽이 20세에 작곡한 이 곡은 파리로 떠나기 전 바르샤바 고별 연주회에서 초연했다. 짝사랑하던 콘스탄치아를 생각하며 작곡했는데 쇼팽이 죽은 후 자서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르샤바 혁명이 일어나면서 쇼팽은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컴퓨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 번씩 고개를 들어 화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곡 설명을 읽다가 궁금해졌다. 쇼팽은 누구인가. 바르샤바 혁명은 무엇인가. 


검색을 통해 찾아본 바로는 바르샤바 혁명은 1848년 독일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었고,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독일과 같은 강압적인 정치를 없애기 위한 요구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이뤄졌다. 바르샤바 혁명은 유럽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사건이라 한다.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 이어 쇼팽의 생애도 찾아봤다. 20세 때 빈에 갔는데 그곳에서 모국의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함께 빈에 나간 친구들이 모국으로 귀국할 때, 귀국해서 군에 입대할 수 없었던 쇼팽은 애국 열정을 작곡에 기울였다고 한다. 여기서 모국의 위급은 무엇인지, 쇼팽은 왜 군대에 입대할 수 없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모국의 위급은 러시아 지배에 대항하는 무장 반란이었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쇼팽을 친구와 아버지가 크게 말렸다.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파리로 갔다. 1831년 쇼팽은 파리에 도착해서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연습곡 Op. 10-12, ‘혁명’이라는 격정적인 연습 곡을 작곡하였다. 당시 폴란드는 음악적으로 전혀 선진국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쇼팽이라는 인물이 폴란드의 위상을 높인 셈이다. 



© dtopkin1, 출처 Unsplash


은서와 색칠하면서 들으려고 튼 클래식이 쇼팽이 살던 시대로 데려갔다. 결핵으로 인한 심낭염으로 사망한 쇼팽이 어떤 마음으로 작곡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830년 폴란드를 떠날 때 친구들이 병에 담아 준 조국의 흙에 덮여 페르라세즈의 묘지에 묻혔다는 한 줄만 보아도 조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날 쇼팽의 곡을 들으며 <도적 : 칼의 소리>를 떠올렸다. 나라 잃은 서러움, 무장 세력과 문화면으로 독립운동하여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노력을 쇼팽의 곡으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듣는 음악은 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듣고 느끼는 것 역시 글쓰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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