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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18. 2024

보는 것과 나 사이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평소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일상에 좋은 자극을 준다. 내겐 전시 관람이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게 다르다. 전시에 관심을 두고 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전시를 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전에는 관람할 기회가 있어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지루하고 어렵고 난해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물론 지금도 작품을 보는 눈이 생겼다거나 작가의 의도를 곧바로 파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시를 볼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보고 난 뒤의 내가 보기 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짐을 느낀다.


서울에 가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남동생과 친한 친구다. 모처럼 가는 서울, 동생도 보고 친구도 보고 싶어서 1박 2일 일정으로 잡았다. 첫날에는 ‘전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는 동생은 누나도 전시를 통해 뭔가 느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에바 알머슨 전시를 시작으로 장 줄리앙, 프랑코 폰타나로 마무리되는 하루였다. 하루에 전시 세 개를 관람한다는 게 무리가 되긴 했지만, 다른 어느 날보다 꽉 찬 하루였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에바 알머슨의 전시를 첫 번째로 봤다. 동생은 이전에 봤던 거라 혼자 본 것도 있지만, 혼자 보는 전시는 같이 보는 전시와 또 다르다고 한다. 작품 설명을 들으며 보기 위해 미리 오디오 가이드를 결제했다. 전시의 주제는 Andando, 스페인어로 ‘계속 걷다’라는 의미다. 일상을 그리는 예술가로서 에바 알머슨의 삶을 회고하는 전시라고 했다.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지는 그림이라 실제로 보면 어떨까 궁금했었다. 지금 이곳, 그림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림은 나로 시작해 연인과 부부, 가족, 이웃으로 이어졌다. 집에 있을 남편과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났다.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보면 행복, 가족, 웃음, 따뜻함, 포근함, 편안함, 일상과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에바 알머슨을 행복을 그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그림을 직접 보니 딱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나도 행복을 쓰는 작가라고 불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미소가 지어졌으면, 따뜻함을 느꼈으면…. 에바 알머슨은 어떤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걸까? 나는 어떤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봐야 할까? 그림을 보면서 글 쓰는 나와 계속 연결 지으며 생각했다.


이 전시의 기획 의도 중에 “반복되는 일상의 탈출구를 찾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관객에게 잊고 있었던 감정과 포근한 기억을 제공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세 가지 모두 나였다. 관람을 마치고 나가기 전에 기념품 가게에서 도록을 샀다. 방금까지 보고 읽었던 작품이 두꺼운 책 한 권에 모두 담겨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혼자만 있고 싶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언제든 이 책을 펼쳐보리라. 묵직한 책을 안고 나가는 길이 든든했다. 


인스타그램에 에바 알머슨 전시회 포토존에서 찍은 셀카를 올렸다. 이틀 뒤, 내가 팔로우하고 있던 에바 알머슨이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세상에! 스치는 인연이지만, 작가와 잠깐이라도 인연이 닿았을 수 있었던 건 사진을 올린 덕분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발자취를 SNS에 남기는 행위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두 번째 전시 관람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에서다. 용산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DDP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이어서 안팎으로 볼거리가 많았다.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프랑스 작가 장 줄리앙의 전시는 세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림뿐만 아니라 스케치북, 설치 미술, 영상 작업물, 보드, 티셔츠, 거울방, 식탁, 식기류 등 곳곳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장 줄리앙은 항상 작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인상적인 순간을 드로잉과 스케치로 기록한다고 한다. 그동안 모은 100권의 스케치북 한 권 한 권이 작품이었다. 스케치북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 속 모습이 짧은 글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옆방에는 드로잉 700여 점이 벽을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영감은 성실함에서 오는 것임을 장 줄리앙의 전시를 보며 느꼈다. 그에게 영감은 가족과 함께 보낸 일상과 대화에도 있었다. 1983년생이라는 젊은 프랑스 작가, 장 줄리앙. 그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작품 활동에 영감을 준 가족을 생각하니 나는 어떤 부모인가 생각하게 된다. 


선우는 그림 그리기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색칠하고 그리기 좋아하더니 여덟 살인 지금도 그림을 즐겨 그린다. A4 용지 몇 장을 스템플러로 찍어 책처럼 만들기도 하고, TV를 보다가도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그린다. 놀이터에 나갈 때도 종합장과 연필 한 자루를 가져 나간다. 이번에도 몸은 전시장에 있었지만, 마음은 집에 있는 가족에게 가 있었다. 그의 전시를 보면서 세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둘째,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거나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함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해주기. 셋째, 아이가 보는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늘 촉 세우고 있기다. 영감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꺾지는 않아야겠다. 


지루할 틈 없는 전시였다. 예술가의 손길이 전시장 나가는 길까지 느껴졌다. 내 작품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 책도 마찬가지다. 내 작업물을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으려면 과정이 단단해야 한다. 단단한 과정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쓰고, 다듬는 시간에 있다. 나도 수첩을 가지고 다니지만 촘촘하게 일상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예술가의 작품도 멋있었지만,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함께 전시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장 줄리앙의 스케치 수첩을 떠올리면 뭐라도 쓰고 싶어 진다. 


며칠 전, 글 쓰는 아티스트 오스틴 클레온의《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읽는데 텍스트계의 장 줄리앙 같다고 느꼈다. 주관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연결 짓는 내가 낯설었다. 장 줄리앙을 안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종종 떠오른다.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의 전시가 내게 ‘어떤 영향’을 준 것만은 틀림없다. 






그날의 마지막 전시는 컬러 사진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사진작가 프랑코 폰타나였다. 작품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림인 줄 알았다. 어떻게 사진이 이렇게 나오지? 궁금했다. 거장의 시선은 달랐다. 인터뷰 영상에서 ‘어떻게’라는 과정보다 ‘왜’ 이렇게 했을까에 초점을 둔다고 했다. 프랑코 폰타나의 전시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영상 인터뷰다. 자막으로 읽는 답변이 하나같이 명언이었다. 그림과 사진을 보는 눈이 부족해 글에 더욱 시선이 갔다. 세 전시 중 가장 정적이고 알쏭달쏭했지만, 사진 전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시를 보고 온 뒤 우연히 블로그 이웃의 글을 읽는데 사진이 프랑코 폰타나를 떠올리게 했다. 사진은 블로그 이웃이 자주 가는 동네 도서관이라고 올린 거였다. 처음에는 요즘 뭐 저런 색을 쓰냐,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더울 때는 멀리서 보이는 파란색 건물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 간판만 없으면 프랑코 폰타나 작품과 느낌이 매우 비슷했다. 


전시에서 보고 느낀 것이 일상생활 중 ‘무엇’과 연결 지어질 때 신기하다. 이제 막 전시 보는 재미를 알아가는 나도 이러할 텐데, 예술 세계에 몸담은 사람과 즐기는 사람은 어떠할까. 그들은 작품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내게 새롭고 좋은 자극을 많이 주고 싶다. 그 자극이 어디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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